금융실명제가 다시 도마위에 올랐다.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재계는 금융실명제의 폐지를 들고 나왔다. 이번에는 우리나라 대기업들을 대표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금융실명제를 전면 유보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섰다. 전경련의 주장은 『예금에 대한 철저한 비밀보장 여건이 성숙되지 않은 상태에서 실명제를 실시하다 보니 민간저축률은 급감하고 과소비만 늘어나는 등 자금흐름의 왜곡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지하자금을 산업자금으로 끌어 들이기 위해서는 실명제의 전면유보조치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전경련의 주장은 언뜻 보면 그럴듯하다. 금융거래에 대한 비밀보장이 약속했던만큼 엄격하지 못하고 부분적으로 저축률이 감소되고 과소비가 조장됐던 것도 완전히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미비점과 부작용이 금융실명제를 전면 유보시켜야 할만큼 경제에 심각한 폐해를 가져온다고 볼 수 없다. 금융실명제는 금융거래를 투명화, 지하경제를 일소함으로써 경제발전을 가속화하고 경제정의를 실현하자는 것이다. 금융실명제가 가져올 과도기적인 폐해를 잘 알면서도 국민들이 이것의 실시를 요구하고 지지해왔던 것은 지하경제의 규모가 지나치게 비대해지고 그 역작용이 너무나 심각해서 정상적인 경제질서를 파괴하는 단계에까지 왔었기 때문이다. 금융실명제의 실시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러한 금융실명제를 지금와서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금융실명제의 부작용이 전경련의 주장대로 그렇게 심각한 것도 아니다. 앞으로 보완작업을 통해 해결해 갈 수 있는 것들이다. 더구나 우리는 정부측의 말 대로 『지난 4년간 경제적·사회적 비용을 치르면서』 금융실명제를 나름대로 정착시켰다. 상당한 대가를 지불한 이상 후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미비점을 수정·보완하여 하루 빨리 정착시키는 일만이 남은 것이다.
전경련과 일부 정당이 주장하는 금융실명제 폐지론에 대해 정부와 시민단체는 물론 중소기업중앙회, 상공회의소 등 전경련에 못지 않은 영향력 있는 경제단체들도 「전면 유보」보다는 수정·보완 쪽을 지지한 것은 뭣을 의미하는가. 금융실명제의 취지와 지금까지의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실 전경련이야말로 금융실명제의 정착에 앞장서줘야 한다. 국민경제를 전례없이 위기의 벼랑에 서게 한 것은 10여개의 재벌그룹들이다. 이들은 거의 모두가 전경련회원사들이다. 이들의 도산은 오너인 경영자들의 경영능력부재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더욱이 이들의 구제에 재정 즉 국민의 혈세가 사용될 예정이다. 전경련은 이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의 말 한마디 없다. 사과는 커녕 경제질서의 확립과 정의를 조금이나마 구현해보겠다는 취지에서 나온 금융실명제를 즉각 폐지하라는 주장이다. 경제논리도 기업윤리도 찾아 볼 수 없다. 전경련은 역사에 역행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전경련은 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양상)에 맞는 경제정책을 요구해 왔다. 기업경영의 투명성과 부패관행의 청산이 그 패러다임의 하나다. 전경련은 자신부터 변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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