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한은 “어불성설” 정치권 움직임이 변수전경련 회장단이 13일 사실상 금융실명제의 폐지를 공식 주장하고 나섬에 따라 금융실명제가 또다시 도마위에 오르게 됐다.
전경련과 일부 야당 등 실명폐지론자들이 내세우는 가장 큰 논리적 근거는 실명제 실시이후 자금흐름이 왜곡되어 경제가 골병이 들고 말았다는 점이다. 실명제 실시로 인해 약 30조원의 지하자금이 사장돼 자금순환의 맥이 끊어지고 과소비가 조장되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 결국 현재의 위기상황까지 초래했다는 것이다. 손병두 전경련상근부회장은 『예금 비밀보장에 대한 관행이 성숙되지 않은 상태에서 실명제가 실시돼 민간저축률이 23.7%까지 떨어졌다』고 주장했다.
학계에서도 이같은 목소리는 적지 않다. 김한응 한국금융연수원 부원장은 『실명제 실시이후 중소기업의 자금난이 심화했고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 통화를 무리하게 공급하다 보니 물가상승압력이 높아지고 경상수지 적자가 확대됐다』고 지적했다. 실명제로 인해 경제의 근본이 흔들렸기 때문에 폐지하는 것이 유일한 처방이라는 것이다. 실명제가 폐지되면 자금이 시중으로 흘러들어와 통화공급을 늘리지 않고도 금리를 자연스레 낮출수 있고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논리다.
이같은 주장에 대해 정부와 금융계는 공감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실명제 실시작업에 참여했던 재경원 당국자는 『실명제 실시 직후 2년 동안 경기가 호황을 누렸다』며 『모든 문제를 실명제 탓으로 돌리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 박철 자금부장도 『가명이든 차명이든 대부분의 자금은 금융권내에서 산업활동에 활용되고 있다』며 『자금흐름 왜곡을 실명제 폐지의 이유로 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금융실명제는 93년 8월 도입된 이래 끊임없이 보완 또는 폐지논란을 겪어 왔고 특히 거액 비자금의혹 사건이 생길때마다 도마위에 오르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전경련 회장단이 최초로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그것도 무기명 장기채권 발행 등 보완책의 수준이 아니라 실명제 자체의 유보를 주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이전과는 상당히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전경련의 주장은 내심 현정권보다는 차기정권을 겨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경련 관계자는 실제로 『실명제 부작용에 대한 연구결과는 차기 정부에 대한 정책과제에 포함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실명제의 운명은 정치권의 움직임이 큰 변수로 작용할 수 밖에 없게 됐다. 현재 자민련은 이미 실명제 폐지를 당론으로 확정했고 신한국당도 실명제폐지로 기울고 있다. 국민회의와 국민신당도 강도높은 「실명제 보완」을 정강정책에 포함시킬 의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어느 정권이든 실명제를 폐지하는 정권은 치명상을 입을 각오를 해야할 것』이라는 재경원 관계자의 말처럼 결국 최종 변수는 국민여론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김준형 기자>김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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