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선율의 완전해체로 가장 평가받는… 그러나 가장 ‘인기없는’ 재즈「아무리 뛰어난 예술가라 할지라도 전통의 틀을 뛰어넘을 수 없다. 왜냐하면 예술가가 무엇을 하든 전통은 그것을 자기것으로 수용하고 말기 때문이다」. 시인 엘리어트는 이렇게 말했지만 재즈에서는 천만의 말씀. 프리 재즈는 영원한 반역이다. 체 게바라의 꿈이었던 영구혁명처럼, 부단한 쇄신이다.
이 지점에 이르면 「제아무리 해봤자 재즈는 대중 연예물」이라는 생각은 쓰레기통에 처박혀야 한다. 프리 재즈는 재즈를 종적(화성적), 횡적(선율적)으로 철저히 해체한다. 일반의 귀에는 오히려 소음으로 들리는 재즈, 그것은 재즈가 대량소비상품으로 전락하는 것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결연한 장치다.
59년 색소폰 주자 오네트 콜먼이 재즈의 정체와 숨막히는 흑백차별 분위기에 맞서 첫 프리 재즈 앨범 「프리 재즈」를 투하했다. 이후 프리 재즈의 물결은 비록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강고하게 이어져 왔다. 「평론가들이 가장 높이 쳐 주는 재즈, 그러나 가장 인기 없는 재즈」로서 말이다.
64년 프리 재즈 계열의 뮤지션들이 시카고에서 재즈 작곡가 조합인 AACM(창조적 뮤지션의 진보적 연맹)을 결성, 프리 재즈는 고고성을 올렸다. 흑인음악 전통, 특히 재즈적 즉흥에 대한 자긍심이 그 요체였다. 이어 70년대 뉴욕 뒷골목으로 옮겨 일제히 둥지를 틀었다. 「다락방 운동(loft scene)」이라 불리는 장관이다. 후미진 곳, 외곬로만 파고들었다.
그러나 80년대 들어 프리 재즈는 전례 없던 실험을 한다. 『주류의 어법을 받아들이자』 『「이것 아니면 저것」 식의 싸움은 이제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80년대 이후의 재즈 르네상스가 끼친 영향이다. 오네트 콜먼(67·색소폰), 돈 체리(61·트럼펫), 세실 테일러(64·피아노), 스티브 레이시(63·색소폰), 파라오 샌더스(57·색소폰), 앤서니 브랙스턴(52·앨토 색소폰), 레스터 보위(56·트럼펫), 아서 블라이드(57·색소폰), 데이비드 머레이(42·색소폰) 등이 건재하다.
한국에는 오히려 외국에서 높이 평가되는 강태환씨(53·색소폰)가 있다. 서양 뮤지션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그만의 경지는 「명상적 프리 재즈」이다.<장병욱 기자>장병욱>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