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국당과 민주당이 후보를 단일화하여 대통령 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는 명분하에 합당에 서명했다. 선거라는 특수한 상황을 앞두고 있기는 하나 뜻만 맞으면 노선이 다른 전 여당과 야당이 합당하고 또 이념과 정책이 상이한 정당끼리 손쉽게 연대하는 것이 한국의 정치풍토라는 점에서 두 정당의 소멸과 합당은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양당은 합당이 국민들에게 선거철때면 있어온 이합집산이 아님을 납득시켜야 한다.선진국의 정당들을 보면서 정당의 적정수명을 묻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들의 수명은 국민에 대한 책임감과 이에 따른 노력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선거에서 승리, 집권했을 때는 자만하지 않고 공약을 성실히 이행하고 패배, 실권했을 때는 각성 분발함으로써 국민의 성원과 지지는 계속되는 것이다.
예나 이제나 우리의 정치인들처럼 정당을 쉽게 만들고 또 하루 아침에 해체, 통합하는 정치인도 없을 듯하다. 이같은 행태는 주권자인 국민을 외면한 채 오직 정치적 실리만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다. 단 한줄, 단 한마디의 정강정책의 수정을 놓고 며칠, 몇주일동안 열띤 격론을 벌이는 선진국 정당들과는 너무나 대조가 되는 것이다. 하물며 당을 해체, 타당과 통합할 때 당연히 정강정책의 조정·손질부터 선결했어야 했다. 신한국당과 민주당이 정책조정은 뒤로 돌린채 당권에 관한 70대 30의 지분원칙을 조건으로 합치기로 한 것은 낡은 정치행태인 것이다.
물론 정당은 변해야 한다. 국민과 시대적 요청에 따라 부단히 자기쇄신을 해야 한다. 또 변화가 있을 때는 말할 것도 없고 명멸소장했을 때도 국민에게 이유를 밝혀 납득시키는 게 책무다. 때문에 이번 양당이 후보단일화와 대선승리를 명분으로 내세우기는 했으나 단숨에 합당키로 한 것은 아쉬운 점이 많다.
신한국당은 멀리는 민정당과 통일민주당에, 가깝게는 민자당에 뿌리를 두고 있다. 90년 1월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자당이 95년 6·27지방선거에서 패배하자 그 해 12월 당명을 신한국당으로 바꿔 새 출발했으나 1년11개월만에 깃발을 접은 것이다. 민주당은 더 기구하다. 1950년대 민주당에서 출발, 민정당·신민당·민한당·민주당·신한민주당 등으로 이어오다 3당 합당에 반대한 야당세력의 결집체가 됐었다. 하지만 95년 지방선거후 은퇴했던 김대중 후보가 신당을 창당하여 소수야당으로 전락해 왔으며 합당으로 소멸케 된 것이다. 이제 정당간의 연대와 통합 등으로 오늘의 상황은 정당의 정체성도 정통성도 없어진 정당의 혼돈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이회창 조순 총재는 이번 합당을 「구국의 결단」이라고 했는데 이에 대한 평가는 선거때 국민이 내릴 것이다. 따라서 대선에서 승리를 위해서는 장차 새 정당―신민주당(가칭)이 정체성과 책임성 있는 정당임을 보여야 한다. 국민이 믿고 기대할 수 있는 정강정책과 집권 청사진을 제시, 납득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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