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환경에서라도 오직 학문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자세는 어디에 있는가지난 100년 넘게 우리는 서양을 배워 왔다. 우선 이 사실을 인정하고 그 의미를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가 만드는 물건을 남의 나라에 팔려면 당연히 그 나라의 사정을 알아야 한다는 실제적 필요성도 있었겠지만, 그것은 오히려 사소한 것이다.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떠한 사회를 만들어 갈 것인가 하는 기본적 태도를 정함에 있어서 서양을 모델로 설정하였다는 점이다. 비유하여 말하자면 춘향전 속에서는 「영원한 인생」도 「인간」도 「성격」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의식적으로 과거와 단절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가 해결하여야 할 어떠한 문제에 대해서도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에서 그것이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얻곤 하였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이들 나라를 향하여 배움의 길을 떠났고 또 떠나고 있다.
사람이 「더 좋은 것」을 향하여 품는 정열이란 무서운 것이다. 원효가 의상과 함께 유학가던 길에 한밤중에 노숙하면서 일어났던 일을 우리는 전설처럼 들어 알고 있다. 그들은 요즈음이라면 베이징(북경)에서조차 비행기로 세시간 걸리는 저 먼 장안(오늘의 서안)을 향하여 걷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의 교통사정을 생각하여 보면, 그것은 엄청난 모험이었음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러한 모험을 저지르게 하였던 것일까. 깨우침, 마음 속의 어두움을 털어버리고 사람 일과 세상의 이치를 아는 것, 그것에 대한 납득할 만한 설명체계를 얻어 보겠다는 열망이 아니면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에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우리 정신의 준거를, 적어도 세계에 대한 지적인 이해방식을 다른 나라, 다른 언어에서 얻어 왔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우리가 문제해결의 방도를 찾기 위하여 다른 나라를 바라보는 것은 200년 또는 그 전에 우리의 조상들이 중국을 바라보았던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다. 우리를 유대민족에 빗대어 『이 시대의 무수한 고난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손으로 장차 수행할 전체 인류를 위한 정신적 대혁명의 준비』라고 하는 「뜻으로 본 한국역사」의 저 허황된 해석이 전혀 허황되지 않게 다가오는 것은 무엇보다 인류의 문화사에 우리가 진 빚에 대한 뚜렷한 자각이 그 밑바닥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의 앎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을 짚어 볼 수 있는 하나의 손쉬운 재료는 일찍이 유학을 갔다가 돌아와 대학에 자리잡은 분들이 무엇을 하였는가를 살펴보는 일이다. 그들은 해방직후 부득이 우리의 대학을 채웠던 제국대학을 나온, 그러나 아무래도 정규의 학문적 훈련이 충분하였다고 할 수 없는 선배들과는 달리 앎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줄 것이라고 사람들의 기대를 모았다. 서양의 유수한 대학의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그것만으로도 학생들은 그 문하생이 되고자 하였다. 그런데 과연 결과는 어떠한가. 지난 봄 이래 대통령후보를 가리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입에 오른 몇 분들이 따지고 보면 이를 최대의 자산으로 커 가서 그에 이르렀던 것을 생각하면, 우리 나라 지성의 이러한 역사적 맥락이 상기되지 않을 수 없었다.
앞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서양의 대학으로 유학을 떠나고 있다고 하였다.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앎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우리 대학이 처하고 있는 참담한 현실에 비추어 보면, 이는 당연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참담한 현실은, 그 원인의 하나를 교수들이 우수한 후학들에게 제시하였던 또는 제시하고 있는 역할모델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용적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이야말로 대학이 할 일의 전부이고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면 없어도 된다고 여기는 듯한 정책 당국자의 편협함을, 일단 입학하였으므로 이제 편하게 학점을 채워 졸업하는 것만이 능사이고 그 동안에 남들이 부러워하는 자격이나 따두면 금상첨화라고 여기는 학생들의 현세주의를 비난하기 전에, 어려운 환경속에서라도 오로지 학문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자세 또는 힘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너도 나도 초심으로 돌아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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