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수논쟁이 혼란한 대선정국에서 빛도 보지 못한 채 사라졌다. 폭로비방전으로 날 새는 「대권전쟁」에서 잠시 「양념」으로 등장했다가 잠복해버린 것이다.김대중 국민회의 총재가 광주에서 『집권하면 양심수를 석방하겠다』고 발언한 데 대해 신한국당은 즉각 『체제전복세력을 석방하라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몰아쳤다. 정부도 『한국에는 한명의 양심수도 없다』고 맞받아쳤다.
이에 앞서 이회창 신한국당총재는 평화방송과의 대담에서 『진정한 의미의 양심수를 추려낼 수 있다면 정치인사면과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발언했다가 『양심수가 없다는 정부당국의 입장을 존중한다』고 해명하고 뒤로 물러섰다.
이에 대해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인터내셔널) 한국지부는 『한국에는 현재 약 100명의 양심수가 있으며 이들의 80%가 국가보안법에 의해 구금돼 있다』며 대선후보들의 인권정책에 대한 토론회를 제안하기도 했다.
앰네스티는 양심수를 「폭력을 사용하거나 주창하지 않은 경우로 평화적인 정치적 종교적 기타 양심상 견지된 신념 또는 인종적 기원 성별 피부색 언어의 이유로 투옥, 구금, 기타 신체적 제한을 받고 있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그러나 대선후보들은 이러한 정의를 외면한 채 양심수문제를 공격 또는 방어의 수단으로만 이용할 뿐 진지한 토론은 외면하고 있다.
모처럼 후보들의 「인권정책」을 가늠해볼 수 있었던 「양심수논쟁」은 흐지부지돼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양심수논쟁의 핵심사안인 국가보안법 개폐문제도 더이상 논란거리로 등장하지 않게 됐다. 이른바 「DJP연합」이후 국민회의가 대선공약을 가다듬는 과정에서 대체입법을 통해 국가보안법의 반민주적 요소를 씻어내겠다는 당론을 포기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은 국가안보를 지킨다는 미명아래 자유민주주의의 구현을 위한 투쟁을 옥죄는 대표적인 악법으로, 헌법재판소에서도 위헌요소가 담긴 법이라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한달여 앞으로 다가온 대선의 구도는 「3자대결」로 가닥이 잡혔다. 정치개혁법의 제정으로 후보간 TV토론을 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됐다. 후보가 난립해 후보간 TV토론이 어렵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게 됐다. 그렇다면 양심수와 국가보안법문제를 후보간 TV토론의 첫번째 의제로 삼아보면 어떨까. 「인권」은 「대권」보다 앞서기 때문에 대통령이 되려는 후보들의 진면목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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