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들어 정치권에 일대 변화가 일어났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대선 후보를 단일화하고 신한국당과 민주당이 통합을 선언한 것이다. 신한국당의 민정계와 자민련은 정치적으로 뿌리가 같다. 국민회의와 민주당은 분당하기 전까지는 한솥밥을 먹는 식구였다. 신한국당과 자민련이 산업화세력을 대표한다면 국민회의와 민주당은 민주화 세력을 대표한다. 그런데 이들 세력은 같은 부류의 정당끼리 다시 모인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짝짓기를 연출했다.관련 정당의 당사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항변할지 모르지만 일반인의 눈으로 이번 이합집산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다른 것이 있다면 민주화 세력의 주력군이 산업화 세력과 연대하고, 산업화 세력의 주력군이 민주화 세력을 흡수한 사실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격이 거의 같은 사건을 두고 신문이 보인 태도는 매우 판이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대선후보를 단일화하기로 공식 결정하자 주요 신문은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비난을 퍼부었다. 밀실야합이니 나눠먹기니 하는 극단적인 용어를 거침없이 구사했다. 주요 신문은 「3김정치 연장위한 술수」 「TK의원들 반발」 「유례없는 정치실험, 거센 역풍」 등의 표제 아래 직접화법이나 간접화법을 총동원해 포격을 퍼부었다. 어느 신문은 양당의 연대에 대해 사설에서 선거법 위반론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주요 신문은 신한국당과 민주당이 전격적으로 합당을 선언하자 전혀 다른 태도를 드러냈다. 두 당은 공식적으로 수임기구를 구성한 것도 아니다. 보도에 따르면 두 후보의 동생과 아들이 초기 단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지분 문제로 이런 저런 잡음이 들리기도 한다. 따지고 보면 밀실 야합이니 나눠먹기니 하는 비난을 받을 소지가 있다. 그러나 어느 신문도 이를 지적하지 않았다. 「신한국당-민주당 통합 전격 합의」 「신한국, 천운이 다시 온다」 「두 총재 함박웃음, 당직자들 전격에 놀라」 「합당 시너지 극대화」 「3김정치 차별화 강도 높여」…. 이런 표제들에서 우리는 주요 신문이 신한국당과 민주당의 합당에 얼마나 파격적으로 호의를 보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같은 사안에 대하여 전혀 상반된 보도나 논설을 내보낸 사례는 그 전에도 숱하게 많았다. 이를테면 92년의 대선자금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는 여론이 일었을 때, 주요 신문은 이에 단호하게 반대했다. 국제화 시대, 정보화 시대로 진입하는데 전력을 기울여야 할 때 불필요하게 과거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신한국당에서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비자금 문제를 폭로하자 주요 신문은 철저한 수사를 강조했다. 검찰이 「대선전 수사 불가」를 밝히자 어느 신문은 사설을 통해 검찰이 「법의 논리」 대신에 「정치논리」를 택했다고 비난하기도 하였다.
왜 주요 신문은 성격이 같은 문제에 대하여 늘 태도를 바꿀까. 그 이유는 고질화한 우리 언론의 그릇된 풍토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 언론은 한마디로 총론적이다. 어느 대상에 대하여 총론적으로 우호적이면 그 대상의 모든 것을 긍정하고 변호한다. 반대로 어느 대상에 대하여 총론적으로 적대적이면 그 대상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폄하한다. 긍정과 부정의 논리를 끌어대는데는 온갖 견강부회를 다 동원한다. 주요 신문이 논리적으로 일관성을 견지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이렇듯 주제가 아니라 대상에 대하여 총론적인 일관성을 견지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신문은 총론보다 각론을 선호한다. 총선이나 대선에서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 대한 지지를 밝히지만, 각론적으로 엄격하게 시시비비를 가린다. 그들은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가 잘못을 저지를 경우 가차없이 비판한다. 마찬가지로, 지지하지 않는 정당이나 후보가 좋은 공약을 내놓으면 그것을 평가하는데 결코 인색함이 없다. 겉으로 객관성 균형성 공정성을 표방하면서, 내밀하게 왜곡하거나 은폐하거나 호도하는 것은 철저히 배격한다. 그들은 결코 등 뒤에서 총을 쏘지 않는다.
집단행동의 시대에서 토론의 시대로 이행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당면한 과제의 하나이다. 그러나 총론에 집착할 때 토론의 효용성은 극히 제한된다. 토론다운 토론이 이루어지는 새로운 시대를 원한다면 우선 언론부터 총론주의를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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