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한 여인이 병마를 딛고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있다. 은표의 생모. 시청률 1위를 자랑하는 KBS1의 드라마 「정 때문에」에서 강부자가 맡은 옥봉이 역이다. 사별한 은표 아버지의 작은댁. 본부인(정혜선 분)을 「성님」으로 받들며 한집에서 우애하며 사는데 그의 푼수 연기가 일품이다. 젊어서 전화교환원으로 일하면서 꾀꼬리같은 목소리로 뭇남성들을 설레게 했다나. 왕년의 잘 나가던 시절을 뽐내느라 전화받을 때 『여보세요』라고 콧소리를 내는데는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 아이들도 드라마에서 그가 나오면 여보세요를 흉내내며 좋아한다. 엄한 시어머니 역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푼수 옥봉이 역을 능란하게 해내니 그의 넓은 연기폭이 감탄스럽기만 하다.14대 국회를 취재하면서 그의 「외도」를 지켜봤던 기자는 이 드라마를 볼 때마다 『모름지기 사람은 제자리에 서있어야 하느니』하는 생각이 든다. 국회의원 강부자의 의정활동이 어쨌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의 진가가 브라운관에서 더 한층 빛난다는 것이다.
그 은표 생모가 요즘 신장병으로 다 죽어 간다. 그가 죽으면 감칠맛나는 푼수 연기를 더 볼 수 없다. 팍팍한 세상에 그 즐거움이 어딘데, 그가 병마를 이겨내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이유다. 드라마 작가가 이 소망을 들어줄까.
브라운관으로 돌아온 강부자의 빛나는 연기를 보면서 생각나는 인사는 대선난장판에 뛰어든 조순 민주당총재다. 이회창 후보측은 두 사람이 손잡고 모처럼 신바람을 내고 있는데 웬 찬물이냐고 힐난할 법도 하다.
그러나 그렇게만 볼 일이 아닌 것같다. 되짚어 보자. 그가 대선판에 뛰어들었던 8월초는 이회창 후보 아들들의 병역면제논란으로 여권표가 크게 동요하고있을 때였다. 당시 여론조사상 조총재의 지지율은 25%에 육박했다. 그 지지표는 대부분 여권성향에서 이탈한 것이었고 이같은 지지의 이동은 「이회창의 추락」을 재촉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조총재에게 의탁했던 여권이탈표는 이인제 후보쪽으로 재이동해 갔다. 급기야 조총재의 지지율은 한자리수로 떨어졌다. 그는 표가 머물렀다가 떠나간 정거장 역할만 한 셈이다.
그 과정에서 조총재가 한국 정치에 기여한 일은 무엇인가. 그의 등을 떠밀었던 일부 제자그룹에서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불평이 나온다고 한다. 물론 이회창 후보를 통해 3김 구태정치청산과 깨끗한 정치실현이라는 정치입문 본래의 뜻은 살아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존경받는 경제학자로, 아니 초대 민선 서울시장으로서 30여년만에 실시된 지방자치의 기반을 든든히 하고 초야로 물러나 원로로 남았더라면 더 빛 났을텐데. 아쉬움을 떨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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