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대기업 연쇄부도’ ‘중소기업 몰사’ ‘주가폭락’ ‘환율급등’ ‘물가불안’ ‘고실업’ ‘취업대란’….
누구의 잘못인가?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할 것인가? 국민과 경제인들도 책임의 일단을 모면할 수는 없다.
그러나 경제는 정책이다. 경제정책에 따라 실물경제는 춤을 춘다.
‘문민경제’의 조타수를 맡았던 6명의 경제부총리들(강경식 현 부총리 포함). 그들이 우리 경제에 남긴 명과 암은 무엇이며 어떤 쪽이 더 큰가?
평균 61.4점. 한국일보 네오포커스팀이 국내의 경제전문가들에게 물어본 역대 경제정책 총수들의 성적표는 C학점을 겨우 넘었다.
A경제연구소 Z소장. 『그들이 해놓은 것이라고는 시장 개방뿐입니다. 무엇하나 제대로 해놓은 것이 없다고 할 수 있지요. 시작이 틀렸기 때문입니다. 문민정부 출범 초기는 장기적 구조 조정을 해야할 때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경제정책은 단기처방 중심이었지요. 경제지표만 돋보이게 해 자신의 업적으로 남기려고 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정책의 흐름이 틀어졌고 그 폐해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문민정부는 출범초 학계와 민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단기 부양책을 썼다. 덕분에 경제성장률은 92년 5.1%에서 93년 5.8%로 올랐다. 경상수지는 92년 45.3억달러 적자에서 3.8억달러의 흑자로 돌아섰다. 물가상승률 역시 92년 6.3%, 92년에는 4.8%로 낮아지는 등 경제성적표는 좋아지는 듯했다. 그러나 무리한 경기부양의 후유증은 곧 나타났다. 94년 경제성장률은 8.6%로 올랐으나 경상수지는 무려 45억3천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했고 물가 역시 6.2%로 상승했다. 문민정부가 경제정책의 골간으로 내세웠던 신경제 5개년 계획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한 것이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문민정부의 경제정책은 사령탑이 너무 자주 바뀜으로써 단추를 미처 고쳐 낄 여유조차 가질 수 없는 지경이었다.
B대학 Y교수. 『지금의 한국 경제 추락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상됐던 것입니다. 부총리와 정책이 자주 바뀌니 전문가들도 누가 어떤 정책을 펼쳤는지 기억조차 잘 못해요. 민간부문에서 정부 정책을 불신하니 정책 수단도 약효가 떨어졌구요. 경기가 제대로 살아나지 않는 것도 당연한 결과입니다』
강경식 부총리가 임기를 다 채우더라도 문민정부 경제부총리 평균재임기간은 10개월에 불과하다. 이 기간에 누구든 소신있게 정책을 펼치고 열매를 거두리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소신은 「고집」이기 일쑤였고 정책은 「구상」에 지나지 않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온 경제성적표는 참담하기만 하다. 장밋빛으로 가득했던 신경제 5개년 계획은 이미 오래전에 빛이 바랬고 대다수 사람들에게 이름조차 가물가물해졌다. 「신경제 5개년 계획」은 마지막 연도인 올해의 목표를 「7%대 성장」 「3%대 물가안정」 「국제수지 35억달러 흑자」로 잡았다. 그러나 재경원에 따르면 올해 국제수지는 흑자는 커녕 무려 135억달러의 적자가 예상된다. 당초 계획보다 무려 170억달러나 차이가 나는 수치다. 덕분에 외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연말 기준 총 1,200억∼1,300억달러에 이를 정도로 위기에 몰려 있다.
올해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4.5%로 전망된다. 당초의 3%대 목표는 이미 물건너 간 지 오래고 환율급등에 따른 추가 물가 상승 움직임이 서민생활을 옥죄고 있다. 위기를 느낀 재정경제원이 정부소관 공공요금은 동결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뜻대로 될 지는 미지수다.
성장률은 기대치인 7%대에 가까운 6% 내외로 예상된다. 그나마 성장의 과실은 특정 업종이나 일부 대기업에 집중되고 나머지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성장의 그늘에서 맥없이 쓰러지고 있다. 특히 하반기 들어 부도가 속출하고 외환·증권시장이 요동치는 등 경제의 기본틀마저 흔들리고 있다. 이 여파는 내년 경제지표에 고스란히 반영될 수 밖에 없다.
C경제연구소 X원장. 『문민정부 경제부총리들의 가장 큰 잘못은 경제철학을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점입니다. 경제수석이 부총리 머리 위에서 경제를 마구 주물러대는 것도 우리만의 특이한 상황같아요. 그러다보니 부총리들이 책임자로서의 철학보다는 사고만 치지 않겠다는 안이한 생각을 하죠』
이경식 전 부총리는 박재윤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의 독주에 전혀 제동을 걸지 못해 주변에서는 『이부총리가 심심했을 것』이라는 비아냥까지 들렸다. 뒤를 이은 정재석 전 부총리는 전임자의 정책을 이어가는 수준이었고 재임기간중 큰 이슈도 없어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박수석의 일방독주가 계속되는 가운데 뛰는 물가를 잡지 못하고 10개월 만에 중도하차했다.
나웅배 전 부총리도 청와대와의 불화설을 낳았으며 후임 한승수 전 부총리 역시 한보사태 처리를 놓고 이석채 당시 경제수석과 불협화음을 계속하다 문민정부 부총리중에서도 가장 짧은 재임기간을 기록했다.
강경식 부총리에 대해서는 아직 청와대와의 마찰이 있다는 징후는 없다. 그러나 강부총리는 기아사태 때 시장경제원칙을 고집하며 정부 불개입 입장을 고수하다 부도사태가 이어지자 다시 정부 개입으로 방향을 트는 등 좌충우돌한 것 자체만으로도 경제를 망친 부총리의 한사람이라는 혹평을 피할 길이 없다.
D대학 W교수. 그의 말은 우리 경제가 출구가 보이지 않는 지경으로 떨어진 이유를 한마디로 설명하고 있다. 『정치논리에 따라 사람을 마구잡이로 바꾸고 그러다보니 낙점된 사람은 임기 중 철학과 비전없이 자리와 업적에만 연연한 결과입니다』<조재우 기자>조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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