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에 있는 민주당사의 기구한 운명이 화제다. 대지 240여평 연건평 1,200여평에 70억∼80억원을 호가하는 그 건물은 88년 김대중 평민당 총재가 마련한 것인데, 그 후 평민당·민주당이 신민당이란 이름으로 통합하면서 신민당 소유가 됐고, 국민회의가 갈라져 나가자 민주당이 가졌고, 곧 신한국당과 민주당이 합당하면 신한국당 소유가 된다.창당, 합당, 탈당, 입당이 어지럽게 이어지자 선관위가 지급할 대선 보조금 배정도 각 당의 의원수 최종 집계를 기다리고 있다. 총액 252억원중 반은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들에 똑같이 배분하고, 나머지는 의석비율과 지난 총선에서의 득표비율 등에 따라 나누는데, 국민신당이 교섭단체를 구성하느냐에 따라 정당별 보조금에 큰 차이가 나게 된다.
건물이나 돈의 운명이야 부수적인 것이니 화제로 끝나면 그만이다. 그러나 정객들의 이합집산은 그렇지가 않다. 이제 선거 구도는 이회창 김대중 이인제의 3자 구도로 정리가 된 것 같고, 유권자들은 싫든 좋든 그들 중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 한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연대한 세력을 함께 저울질해야 한다.
세 후보를 둘러싼 인적구성은 너무나 이질적이고, 연대의 명분도 주장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일단 선거에서 이겨서 권력 일선에 살아남아야 한다는 욕구, 다른 선택이 없는 절박함이 만든 연대도 있다. 그들의 과거보다는 미래를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짚고 넘어갈 것은 짚어야 한다.
지난주 칼럼에서 소위 DJT연대의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이회창·조순의 연대도 석연치 않다. 그들은 「깨끗한 정치, 튼튼한 경제」라는 발빠른 새 슬로건으로 지지율을 끌어올리면서 3김청산을 외치고 있는데, 우선 그들이 언제부터 3김청산의 소신을 갖게 되었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분명치 않다. 조순씨는 불과 2년전인 95년 김대중씨의 권유와 지원으로 서울시장이 될 수 있었고, 이회창씨 역시 크고 작은 갈등이 있었으나 김영삼 대통령과 손을 잡고 오늘에 이른 사람이다.
그들이 어느날 갑자기 3김청산을 외치는 것은 아무리 선거전략이라 해도 국민이 마음속 깊이 동감할 수 있는 처사는 아니다. 이회창씨가 5, 6공 세력에 둘러싸여서 김영삼·김대중 청산을 주장하는 것은 더구나 설득력이 없다. 두 김씨는 군사독재에 맞서 민주화 투쟁을 한 사람들인데, 어떻게 5, 6공 세력으로 그들을 극복하고 대치한단 말인가.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갔다는 주장을 다시 펼 생각인가.
이회창·조순씨는 자신의 분야에서 한평생 명성과 업적을 쌓았고, 탄탄한 정규 교육을 받았고, 깨끗한 엘리트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정치에 뛰어든 짧은 기간에 깨끗한 이미지는 급속하게 흔들리고 오염됐다. 노태우정부의 부총리를 지낸 후 야당의 후보 제안을 받아들여 서울시장이 되고, 시장직에서 중도하차하지 않겠다는 거듭된 약속을 저버리고, 시장이 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얻었던 김대중씨에게 등을 돌린 그의 행태는 구시대 정치인 못지않다. 이회창씨 역시 「법대로」이미지에 많은 상처를 입었고, 정치 경력이 짧기 때문에 깨끗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 큰 점수를 얻지 못하고 있다.
얼마전에 만난 이화여대의 이어령 교수는 「판단중지」라는 재미있는 표현으로 요즘 대선정국을 표현했다. 각 인물들에 대한 판단을 일체 중단하고 있으나 매달 신문에 칼럼을 써야 할 때는 할 수 없이 판단을 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정말로 요즘같은 세태속에서 어떤 판단을 하면서 칼럼을 쓴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제까지 옳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오늘 상식이하의 행동을 하고 있어 경악을 금치 못할 때도 있다. 오죽하면 매스컴이 일제히 「개판」이라는 표현까지 쓰는 사태가 왔겠는가.
어차피 선거란 우리가 이상적인 후보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입후보한 인물들 중에서 상대적으로 나은, 또는 덜 나쁜 후보를 뽑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앞으로 한달 남짓한 선거운동 기간동안 일희일비하지 말고 마음 편하게 각 후보를 관찰하면서 「덜 나쁜 후보」를 골라야 한다. 국민은 지금 판단중지중이다.<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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