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역없는 수사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있는 일본의 도쿄(동경)지검 특수부가 10일로 발족 50주년을 맞았다.47년 11월10일 탄생한 도쿄지검 특수부는 지난 반세기동안 「거악」과 당당히 맞서며 눈부신 활약을 펼쳐왔다. 그 모태는 전후 사회문제였던 암거래 물자의 적발을 위해 설치된 「인타이조(은퇴장) 사건 수사부」. 수사부는 아시다 히토시(호전균) 전 총리의 체포로까지 발전된 「쇼와덴코(소화전공) 비리사건」을 계기로 49년 현재의 명칭을 얻었고 정·관계 비리와 대형경제 사건을 전담 추적하는 수사기관으로 자리잡게 됐다.
일본의 대표적인 정·재계 유착비리인 「록히드사건」(76년)과 「리쿠르트 사건」(89년),「제네콘(종합건설회사) 사건」(93∼94년) 등은 특수부가 그동안 올린 대표적인 「전과」중의 일부이다. 최근에는 「노무라(야촌)증권 사건」으로 표면화된 「총회꾼」 관련 금융비리사건을 맡아 맹위를 떨치고 있다. 특수부는 무엇보다도 『잘못을 하면 누구든지 처벌받고 법을 준수해도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평범한 사실을 국민의 가슴속에 심어주며 일본사회의 발전과 안정에 공헌해 왔다. 록히드사건으로 재판받았던 사업가 오사노 겐지(소좌야현치·작고)가 『전후 일본경제의 발전은 특수부 덕분』이라고 말한 것은 곱씹어 볼만하다. 그런데 이같은 「천하의」 특수부도 어두운 시절이 있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특수부는 발족한후 상당기간 동안 권력층의 부정부패를 다스리지 못해 비난을 받았다. 그런 특수부가 록히드사건에서 당시 최고 권력자인 다나카 가쿠에이(전중각영) 총리를 구속한 것을 계기로 명예를 회복하며 오늘날에 이른 것이다. 다나카 총리는 당시 「물방망이」였던 검찰을 얕보다가 당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결국 록히드 사건은 일본검찰에 있어서는 검찰권 회복을 위한 소중한 기회였던 셈이다.
최근 우리의 검찰을 도쿄지검 특수부와 비교해 평가하는 경우가 있다. 굳이 비교하자면 일본은 록히드사건과 같은 기회를 잡았고 우리는 「그 많은」 기회를 이 눈치 저 눈치보며 놓쳤다는 점이 가장 알기쉬운 차이가 아닐까. 물론 우리 검찰도 최근 전직대통령을 2명씩이나 단죄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법앞에 만민이 평등해졌다거나 검찰이 공정하다는 등의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오히려 중심없이 흔들리는 검찰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증폭됐을 뿐이다. 분명한 것은 앞으로도 우리 검찰에게 또 다른 기회가 온다는 것이다. 우리 검찰은 우리나라의 발전과 안정을 위해 그 기회를 꼭 잡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도쿄>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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