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만 해도 여성경영자를 인터뷰할때는 꼭 빠지지 않는 질문이 있었다. 술실력이 어느 정도인가.주로 술자리에서 거래가 성사되던 당시로서는 여성경영자의 사업수완을 떠보는 필수적인 질문이었다. 과장급 이상으로 승진한 여성을 인터뷰할때도 자주 등장했다. 관리자로서의 능력도 저녁에 술 한잔을 사며 아랫사람을 다독이는데 달려있다고 믿었던 시절의 삽화들이다.
요즘 그런 질문을 한다면 구식 취급을 받는다. 억지로 사주는 술을 좋아하는 젊은 층도 사라졌고 창의력 인화력 같은 자질과 섬세하고 치밀한 논리가 술실력으로 연상되는 무조건적인 단합과 끈끈한 인간관계보다 정보화사회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자들 술실력도 세졌다고는 하지만 누대의 술내공을 쌓지못한 평범한 여성들에게는 반가운 변화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업들의 채용방식은 사라져가는 술문화에서 미래의 대안을 찾고 있다. 연합통신 기사에 따르면 올 하반기 채용에서 「우방」은 술자리 면접을, 「현대상선」은 갈비집 면접을 하며 「대상(미원)」은 노래방 술집 백화점 사우나 가운데 지원자가 원하는 곳에서 면접하는 방식을 채택, 직·간접적으로 술 관련 면접을 선호하고 있다.
술이 긴장을 풀어준다는 점에서 응시자의 적나라한 인격을 발견하겠다는 의도겠지만 이해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한국경영자 총협회 자문위원인 김재원(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런 채용방식이 기업에도 도움이 안된다고 주장한다.
우선 이 방식은 사람을 업무능력과는 무관한 내용으로 차별함으로써 응시대상자의 폭 자체를 줄인다. 여성과 술 못마시는 남성은 면접대상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크다. 사우나까지 등장하니 여성면접관이 없으면 여성은 당연히 못가고 남들과 목욕을 즐기지 않는 남성도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잃는다. 업무능력이 아니라 다른 능력이 출중한 사람을 뽑을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 『응시자들이 모멸감을 느끼고 면접결과를 납득하지 못할 가능성이 큰, 구시대적인 채용방식이 격식파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등장하는 현실이 무척 안타깝다』고 김교수는 말한다. 남녀차별을 금지하는 남녀고용평등법에도 위배되는 것이라고 그는 지적한다.
「시카고의 이발사 수는 몇명일까」 「나를 주제로 광고면을 제작하라」. 최근 포브스지가 소개한 앤더슨컨설팅과 이코노미스트지의 면접시험문제이다. 시카고의 남자인구와 이발사의 하루 업무량을 추론해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입체적 사고를 가진 사람과 술자리에서 호쾌했던 사람이 국제무대에서 만나면 누가 이길까. 생각해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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