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분대사 가상적 물질에 영 샤퍼 ‘인슐린’ 명명/캐나다 밴팅·베스트 1921년 “실제발견” 발표1901년 미국의 병리학자 린제이 오피는 당뇨병으로 죽은 환자들의 시신을 부검, 췌장의 랑게르한스섬에 병리학적인 변화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908년에는 독일의 추엘처가 췌장 추출물을 당뇨병 환자들에게 투여하는 실험적 치료를 감행했다. 이 치료는 소변의 당을 줄이는 등 약간의 효과를 보였지만 부작용 때문에 곧 금지됐다.
비슷한 시도가 미국의 스콧 등에 의해 실험동물을 대상으로 지속됐으며, 추출물을 정제하는 노력이 기울여졌다. 그 중 괄목할 만한 것은 루마니아 의사 파울레스코의 연구였다. 그의 연구결과는 독일의 침공 등으로 인슐린이 발견된 1921년까지 발표되지 못했다. 한편 영국의 샤퍼는 당분 대사에 필요한 물질이 랑게르한스섬에서 만들어진다고 여겨 그 「가상적」 물질에 섬을 뜻하는 라틴어(insula)를 따서 「인슐린(insulin)」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인슐린의 발견과 임상적 사용을 위한 정제는 캐나다 토론토대학의 생리학실험실에서 이뤄졌다. 「현대의학이 거둔 최대의 개가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 인슐린의 발견은 프레데릭 밴팅과 허버트 베스트의 공이다. 그러나 당시 그들의 사정은 신통치 않았다. 실험실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연구비는 커녕 봉급도 제대로 못받는 형편이었다. 그런 역경을 이겨낸 두사람은 주임교수인 맥클리오드의 검토를 거쳐 1921년 11월14일 그 지역 생리학회 학술집담회에서 자신들의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로써 수많은 당뇨병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길이 열리게 됐다.<황상익 서울대 의대 교수·의사학>황상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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