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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수 사면론’의 본질/한승헌 변호사(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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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수 사면론’의 본질/한승헌 변호사(아침을 열며)

입력
1997.1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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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의 양심수 사면론에 대한 여권과 일부 언론의 공격은 매우 변칙적이다. 일부에서는 국제앰네스티의 「양심수」에 관한 정의를 거론하면서 지금 이 나라에는 양심수가 없다는 주장을 편다. 하기는 역대 군사정권에서 양심수의 존재를 자인한 적은 없다. 세계의 모든 독재정권이 그러했듯이 실정법 위반의 반국가사범이 있을 뿐이라고 우긴다. 그러나 그것이 정치적 압제와 부도덕한 권력행사를 은폐하기 위한 강변이었음은 역사가 실증해주고 있다. 지난날의 억압구조하에서 실정법 위반으로 처벌된 정치범 내지 시국사범 가운데 얼마나 많은 양심수가 반국가사범으로 몰려서 옥고를 치렀는지는 재론할 필요조차 없다.인권단체나 종교계 또는 야권에서 양심수 석방을 요구하면 집권자와 그를 둘러싼 여권과 일부 언론은 「절대불가」를 「합창」하는 것이 습관화했다. 법치주의가 파괴되고 사회혼란이 온다는 것이었다. 그러다가도 국내외의 여론에 몰려 그들에 대한 석방·사면조치를 단행하게 되면 정부는 국민화합을 위한 일대 영단이라고 하루아침에 말을 바꾸곤 했다. 같은 사면도 누가 주장하느냐에 따라 그처럼 한 입으로 두 말을 하는 세력이 지금도 이 땅에 건재하고 있다.

최근의 양심수 사면론만 하더라도 한 두 사람이 제기한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최우선 과제는 양심수의 전원 석방』이라고 외친 사람은 바로 김영삼 대통령 자신이었다. 그러나 김영삼 정권이 들어선 뒤에도 유신이나 5, 6공시절에 양산되었던 양심수는 전원 석방되지 않았을 뿐더러 새로운 구금자가 늘어났다. 문민정부라는 간판에 가려서 국민의 관심이 희박해졌을 뿐 민가협 등 인권단체의 조사·집계를 보면 뜻밖의 실상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따라서 양심수 석방론이 각계에서 꾸준히 제기된 것도 주지의 사실이요, 당연한 추세였다. 그런데 유독 김대중 후보의 이번 양심수 사면론에 대해서는 여당측에서 『그동안 숨겨온 사상의 실체가 드러난 것』이라는 식의 해묵은 색깔론까지 들고 나왔다. 그동안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하여 국무총리를 지낸 이수성씨나 안기부장 출신의 박세직의원까지도 국가보안법위반 등의 시국사범을 포함한 양심수 석방을 역설했는데, 그때는 가만히 있던 여당과 일부 언론이 유독 김총재의 이번 사면론에 대해서만 색깔론을 재탕하는 것은 온당치가 못하다. 심지어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도 같은 당 초선의원들의 건의를 받아 같은 맥락의 석방론을 폈는데, 바로 그 정당의 대변인이 양심수 사면론자의 사상문제를 거론했으니 매우 희화적이다.

역대 정권 하에서 여러번에 걸쳐 사면·석방이 있었고, 그 가운데는 국가보안법 수형자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도 사면권자인 당시 대통령의 용공성 내지 사상에 대한 공격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면 요즈음의 양심수 사면론에 맞선 색깔론 제기는 그야말로 정략적인 오산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양심수의 개념이나 누구에 대한 반대본능에 집착한 나머지 특정 유형의 수감자에 대한 사면이 차별화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양심수의 존재를 부정하는 정권도 국가보안법 위반 수감자들을 포함한 정치범 내지 시국사범을 과감히 석방·사면한 전례가 허다했고 보면, 정부의 양심수 부정론은 사면권의 행사와 무관했던 것이다. 물론 사면이 갖는 인권차원의 배려와 형벌권 행사의 반성이라는 측면이 배제될 수는 없지만, 이 대목에 과민한 컴플렉스를 느끼는 정부가 되어서는 안된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시국사범에 대한 사면이 거의 없었던 점도 그런 컴플렉스의 작용으로 보아 유감스러운 터인지라 내년 2월의 새 정부 출범 이전에라도 대폭사면을 단행함으로써 결자해지의 본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여기에는 역대 정권 하에서의 장기수들에 대한 배려도 따라야 할 것이다. 아직도 감옥에는 남아공의 대통령 만델라가 투옥되었던 27년보다 더 오래 수감중인 재소자가 23명이나 있는가 하면 40년째 옥살이를 하고 있는 세계행형사상 최장기수도 있는 실정이다. 인도적 견지에서 그들의 옥살이는 가혹한 것이고 그런 가혹함이 공인되고 있다는 것은 한 나라의 부끄러움이기도 하다.

바야흐로 입만 열면 국제화나 세계화를 부르짖는 21세기의 문턱에서 양심수와 인권문제 역시 좀 더 넓은 시야에서 새롭게 인식되어야 마땅하다. 국제적인 규범과 기준에 입각한 인권론을 끌어오지 않더라도 우리들 내부의 권력의 도덕성과 민주사회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양심수 내지 시국사범에 대한 사면은 시급히 실현되어야 할 과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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