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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의 도시 양주를 지나며…(최부의 표해록: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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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의 도시 양주를 지나며…(최부의 표해록:9)

입력
1997.1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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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유우석·두목 등도 극찬한 도시/“온 성안에 봄바람 흐드러지고 설레는 풍악의 물결 소리여”/금기깨고 유일하게 시어로 이미지화수저우(소주)에서 북상한 최부는 전장(진강)에서 장강을 건너 양저우(양주)에 이른다. 전장은 장강하류의 건널목. 장사꾼 트럭으로 북새통을 이뤄 우리는 한나절 남짓 기다려서야 황탁한 바다같은 강을 건넜다. 양저우의 황금시대는 당나라 때로 상공업과 무역에 종사하는 신라인, 일본인, 동남아시아인, 아랍인이 북적댔다.

이백 유우석 두목같은 시인들이 앞다퉈 찬가를 바칠정도로 양저우는 영원한 낭만의 도시였다.

최부는 「표해록」중에서 금기를 깨고 양저우만은 유일하게 시어로서 이미지를 형상화했다. 「온 성안에 봄바람 흐드러지고 설레는 풍악의 물결소리여」. 양저우의 봄을 노래한 당 시인 야오허(요합·779―846)의 「양주춘사」, 오율삼수중 끝수의 마지막 두 구절이다.

2월22일 최부는 양저우성 남문 밖 광링(광릉)역에서 일박했다. 양저우의 운하는 S자형으로 성밖 외곽을 서남에서 동북으로 돌기 때문에 최부는 뱃길에서 샹그릴라같은 꿈의 도시 양저우의 참모습을 보지 못한채 지나쳤다. 지금은 서남쪽 운하가에 명나라 때(1582∼1584) 세운 7층 8각의 문봉탑이 서 있지만 그때에는 없었다. 봄날 흐드러진 풍광 속에서도 최부의 마음은 어둡기만 했다. 『아버님 장례를 아직 치르지 못한 채 늙으신 어머님 홀로 계시다. 자식된 도리를 다하지 못했는데 갈 길은 멀고 괴로워라! 천지가 캄캄하구나』

우리는 양저우 시내로 들어가 서방사를 찾았다. 당나라 때 세운 후 명나라 시절 중창한 고찰이다. 최부보다 5년 전인 1483년, 제주의 정의현감 이섬 일행이 양저우로 표류, 잠시 머문 곳이다. 우람한 대웅전은 옛모습 그대로이지만 지금은 절이 아니라 양저우기념관으로 바뀌었다. 양저우가 낳은 18세기 중국의 전위예술가 그룹, 대나무를 잘 그린다는 진눙(금농), 중국의 추사로 일컫어지는 정판차오(정판교) 등이 중심이다. 평산당 대명사 등 나그네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과거와 현실이 교차되는 역사의 한마당이었다. 1655∼57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사절단원으로 청나라를 방문한 요안 니위호프(Joan Nieuhof)는 1656년 5월21일자 일기에서 양저우를 극찬했다. 『양저우는 부읍(부움)이고 경치도 아름답다. 이 고장은 미인이 많기로 이름났다. 그들은 교태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다른 곳의 여자들보다 훨씬 뛰어나다』 우리는 도중에 가오유(고우)에 들르기로 했다. 가오유 남문밖 운하 동편의 위청(우성)역을 보기 위해서다. 최부는 위청역에 한밤중(하오 9∼11시) 도착, 다음날 새벽녘(상오 1∼3시) 떠났다. 최부가 중국여행 중 머문 곳은 주로 역참. 역참제도란 옛날 온 중국땅에 거미줄처럼 널려 있던 관영의 통신, 숙박시설을 말한다. 어떤 학자는 명대 역참수를 최소한 1,295개 이상으로 잡고 있다. 85년 민가로 변한 위청역을 발견, 95년까지 현존 유일한 역참으로 복원해 96년에는 국보로 지정했다. 관역항 골목 어귀에는 돌문 위에 기와누각을 얹은 장엄한 정문이 서있고 편액은 「황화(사신이라는 뜻)」두 글자. 앞채가 황화청(귀빈실), 뒤채가 주절당(접대실), 모두 명대 건물이다.

가오유 경내에서 호송관 양왕이 조선군인 김속을 매질하는 불상사가 발행했다. 최부는 즉각 항의했다. 『당신은 호송만 하면 될 일이지 어찌 함부로 이국인을 매질하오. 중국법조문에 있단 말이오. 우리는 마치 장님이나 벙어리같아 자칫 실수하면 말로 타일러야지 어찌 매질을 하오. 중국인이 먼손을 대접하는 게 도리가 아니지 않소』 최부의 바른 말에 양왕은 묵묵부답이었다. 최부는 길고 험난한 여정에서도 한시도 잊지 않고 아랫사람을 돌보았다.<박태근 관동대 객원교수(중국 가오유·고우에서)>

◎고려정/송나라때 고려인들 숙박시설 추정

한·중간의 고대뱃길은 북방과 남방 두 항로가 있었다. 중국측 주항은 산둥(산동)의 덩저우(등주), 저장(절강)의 닝보(녕파)이다. 고려 전기에는 신라의 뒤를 이어 송나라와 교류가 활발했다. 1074년 고려는 거란족 때문에 북방항로를 폐쇄하고 남방항로인 닝보항을 주로 이용했고 이어 송나라도 1079년 고려-닝보항로를 공인, 닝보는 두 나라 해상교통의 주항이 됐다. 송은 1117년 고려인접대를 위해 「내원국」이라는 공관을 설치했는데 그 자리는 지금의 닝보 진명로 보규항구이다. 송의 수도 카이펑(개봉)과 닝보를 내왕하는 고려인을 위해 수저우(소주)에도 고려정을 세웠다. 그 자리는 수저우성 서문 밖. 최부에 따르면 명나라 때도 건물은 남아 있어서 통파정으로 불렸다. 1229년 돌에 새긴 수저우 지도인 평강도에도 고려정이 등장한다.

고려정을 둘러싸고 연전에 현지 답사한 한·중학자 사이에 이견이 생겼다. 한국학자는 『고려정은 고려와 송의 적극적 교류의 증거로서 의미가 있으며 숙박 가능한 시설』이라고 주장한 반면 중국학자는 고려정의 의미를 글자 그대로 정자로만 해석, 『단순히 고려인이 만나는 장소일 뿐 숙박시설은 아니다』라고 했다. 송나라 때 펴낸 「오군도경속기」와 「오군지」를 보면 고려정은 하나만이 아니었다. 성 안에 회원정 안류정 두 곳이 있고 성 밖 남문인 판먼(반문) 밖 두 곳, 모두 4개나 있었다. 이것을 보면 당시 고려인의 교류가 얼마나 활발했는지 알 수 있다. 그 기능도 단순한 만남의 장소가 아닌 완전한 숙박시설이다. 「각건대관」(각각 큰 건물을 세웠다)의 「관」은 명사로 숙박소를 말한다. 또 「고려인입조 작차정이관지(고려인이 오기 때문에 이 정자를 만들어 묵게 한다)」의 「관」은 동사로 묵는다(숙박)는 뜻이다. 키워드는 「관」한 글자이다.

◎표해록 초/“양주의 시가지엔 주염 10리­24개의 다리­36개의 저수지가 있어 그 경관은…”

2월18일. 루오(나)태감이 나에게 말했다.

―우리는 당신을 존경하고 있소. 천순(1457∼1464) 성화(1465∼1486)연간에 귀국에 갔던 태감들의 성명을 아시오.

『성화연간에는 정퉁(정동) 지앙위(강옥) 진싱(김흥)태감 등이 사신으로 왔던 걸 기억하고 있소』

―모두 작고하고 진태감만 베이징(북경)에 있소.

『작고란 두 글자가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소』

―중국사람들은 죽은 사람을 작고했다고 하오. 귀국에서는 뭐라고 말하오.

『물고라고 하오. 물은 일이며 고는 없다는 말로 죽으면 다시는 일할 수 없다는 뜻이오』

2월21일. 양쯔(양자)강은 폭이 20여리나 되고 민산에서 발원하여 한수와 만나 난징(남경)을 경유, 진강부에 이르러 하나로 모여 바다로 흘러들어갔다. 「우공」에 민산도강이라고 한 곳이 바로 여기다. 동쪽은 오현과 회계군으로 통하고 서는 한수에 접하고 있으며 북쪽은 회수와 사수에 닿고 남은 푸젠(복건)성과 저장성에 닿아 있어서 그야말로 사방으로 통하지 않는 곳이 없다.

2월22일. 지휘첨사 양왕이 천호 푸룽(부영)을 시켜 물어왔다.

―귀국의 한이란 부인이 명나라에 들어와 있었던 사실을 아시오.

『한씨란 사람이 명나라에 들어갔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소』

―그렇소 한씨는 바로 귀국의 부인이오. 명나라에 들어와 황제의 유모로 있었소. 바로 양지휘가 한씨를 장사지낼 때 감독으로 있어서 물어 본 거요.

2월23일. 양저우는 수나라 때 강물의 도시 즉 강도라고 하던 땅이다. 강 왼쪽의 시가지는 주렴(주염) 10리, 24개의 다리, 36군데의 저수지 등이 있어 그 경관은 이 일대에서 가장 뛰어나 이른바 『봄바람은 성곽을 쓸어 버리고 생황과 노래는 귀에 들끓는다』고 했던 곳이다. 양주위 백호 자오지안(조감)이 6년전 이섬이라는 조선사람도 여기에 표착했다가 귀국하였는데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최기홍 역 「표해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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