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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탄신 600돌을 보내며/허웅 한글학회 이사장(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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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탄신 600돌을 보내며/허웅 한글학회 이사장(아침을 열며)

입력
1997.1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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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에서는 세계에서 문맹(글소경)퇴치를 한 나라나 단체에 대해 주는 상의 이름을 「세종상」으로 정하고 있는데 올해는 이 시상식이 지난 9월8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거행됐다. 세종성왕의 탄신 600돌을 기념해서이다.이것은 우리나라가 이러한 면에 있어서는 가장 모범이 될 만한 나라이고 또 그렇게 된 이유는 우리 한글의 덕택임을 유네스코가 인정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한글은 이 세계의 글자 가운데서 가장 과학적이요, 가장 합리적으로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가장 배우기 쉽게 만들어진 글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자는 우리로 하여금 가장 효과적으로 문맹에서 벗어나도록 해준 것이다. 그 혜택은 매우 큰데 이것은 바로 세종성왕의 은덕이다.

지금 나는 조선조 초기의 우리나라 글자살이에 대한 확실한 통계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말하려는 것은 추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때 우리나라에 있어서 글자는 오직 한자 뿐이었다. 그 이전에 우리나라에도 우리 글자가 있었다는 말이 있기는 하나 이것을 증명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조선 초기에 우리들은 한문을 쓰든지 「이두글」을 쓰든지 하고 있었던 것인데 이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정인지는 훈민정음 해례의 꼬리글에서 이두같은 것은 말을 적는데 있어서는 만에 하나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때 우리나라의 글자를 아는 지식인의 수를 추리해보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 정확한 숫자는 알 길이 없지만 극히 적은 수이었으리라는 것은 능히 짐작이 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때의 선비들은 이것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최만리의 훈민정음 반대 상소문을 보면 그 때의 선비들이 이 상황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글자 모르는 백성도 자기들의 그 무식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불편을 토로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역사적인 상황 속에서 오직 한 분, 세종성왕은 나라의 이러한 모습을 안타깝게 여기게 되었던 모양이다. 글자 모르는 백성의 사정이 얼마나 딱한 일인지를 뼈저리게 느꼈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저 어려운 중국의 글자를 가지고 나라 백성을 다 글자 아는 사람으로 만들 수는 없는 일이란 것을 세종임금은 알고 있었다. 중국말을 적는 이 글자는 우리 말을 적는데는 맞지 않는 것임도 잘 꿰뚫어 보고 있었다.

훈민정음의 서문에 있는 말은 바로 이 분이 그러한 사실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음을 우리에게 일러주고 있다.

우리나라 말은 중국말과 다르기 때문에 그 글자로써는 우리말을 적을 수 없다는 것은 바로 세종의 투철한 민족자주정신에서 솟아난 말이다. 모든 것이 다 중국과 닮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그 때의 지식인들의 소용돌이 속에서 오직 한 분 세종만이 우리는 중국인이 아니라는 것, 따라서 우리말은 중국말과 다르다는 것을 외치고 새로운 글자를 만들려고 결심한 것 같다. 그리고 그 새로운 글자는 한문글자와 같은 어려운 글자이어서는 안된다는 신념을 세종임금은 또한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한자 아닌 글자를 만들되, 그것이 한자와 같은 어려운 글자이어서는 일반백성이 배울 수 없음은 한자나 한가지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세종임금은 일하면서도 배워야 하는 「민초」들을 위해 글자를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은 성공을 거두었다. 한글이 이렇게 쉽게 만들어진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리하여 글자 소경을 없애는, 단군이래 일찍 경험하지 못했던 역사의 전환기를 우리 겨레는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단군 이래 우리나라의 역사를 비추어준 가장 큰 광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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