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898학교에 다니는 딸애들은 요즘 방학중이다. 말이 방학이지 겨우 일주일이다. 이번 방학은 갑작스레 몰아닥친 한파때문도 아니고 추수감사절을 즐기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렇다고 정례 방학철은 더욱 아니다. 딸애들에게 『웬 방학이냐』고 물으면 『그냥 방학이래요』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이유를 모른다고 탓할 일은 아니다. 선생님도 굳이 가르쳐주지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70여년동안 11월7일, 즉 혁명기념일이 끼어있는 주엔 줄곧 학교문을 닫아왔으니 올해도 대부분 「그냥 쉬는」한주일, 방학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91년 12월 구 소련의 붕괴전까지만해도 혁명기념일 행사가 요란해 초등학생들도 왜 학교를 가지않는지 알고 있었다.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초등학생들은 10월혁명에 더 이상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학교에서도 가르치지 않는다. 혁명은 초등학생들에게 일주일간의 방학으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혁명발발 80주년을 맞은 지금, 러시아인들의 몸과 마음을 지배해온 사상과 이념이 하루아침에 잊혀지고 바뀐다는게 의아할 정도다. 이는 러시아가 그만큼 빨리 공산체제의 잔재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증거다. 「앙시앙 레짐(구체제)」 부수기라는 측면에서 보면 또 하나의 혁명이다. 물론 이 혁명은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80년전의 「피의 혁명」이 아니다. 6,200만명이 희생됐던 지난 날과는 달리 민중을 향한 권력의 폭력은 사라졌다. 새 체제에 길들이려는 강압적인 분위기도, 자라나는 세대에 대한 세뇌교육도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움직이는 수많은 시장들과 그 속에 쌓여있는 다양한 물건들, 길거리를 가득 메운 광고판, 토지를 농민들의 손에 되돌려주려는 새 토지법안 논쟁, 대규모 국영기업의 민영화 작업…. 이런 것이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러시아에서 벌어지는 시장경제 혁명의 면면들이다.
이 혁명의 끝이 어디인지 아무도 모른다. 성난 군중이 거리로 뛰쳐나왔던 80년전에 오늘날의 실패를 예견하지 못했듯이. 혁명기념일을 맞아 붉은 광장으로 나온 모스크바 시민들이 느끼는 11월의 하늘은 예나 지금이나 회색빛 일색이다.<모스크바>모스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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