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는 어쩌자고 잠자는 사자 콧구멍을 자꾸만 건드리려고 하는가. DJ는 이제 다음 대통령이나 다름 없지 않나. 야당 단일후보에, DJT연합까지 성사된 마당 아닌가.―여론조사마다 부동의 1위고, 엊그제는 어느 신문인가 그의 당선가능성을 점친 사람이 60%를 넘었다는 조사결과를 실었더구먼. 미국이나 일본 언론도 슬슬 그의 집권 가능성을 예측하기 시작했고.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신문에 칼럼을 쓴다면서 요즘 같은 때 대통령선거 말고 다른 얘기를 한다면 독자가 읽어 주겠는가.
―그 사정이야 알 만하네만 어째서 하필이면 DJ냐 이 말이지.
―지지도가 제일 높다는 건 국민의 관심이 그만큼 그에게 쏠려 있다는 뜻이 아닌가. 그러니 대통령 선거 얘기를 하자면 자연히 DJ를 먼저 다루게 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그래도 다른 사람과는 달라서 그에게는 성미 급한 열성팬이 많지 않나.
―그런 태도가 DJ에 대한 역반응으로 돌아간다는 걸 알 만도 할 텐데. 아무도 못 말리는 모양이지. DJ 당자도 그것 때문에 퍽 곤혹스러워한다는 얘기가 들리기는 하더구먼.
―지지도가 1등이 아니라도 DJ에 대해 사람들이 할 얘기가 많은 건 사실이지. 71년 대선에서 박정희와 당당히 맞서 싸울 때, 군사정권의 박해를 받아 해외를 유랑할 때, 그는 자유와 민주를 갈망하는 민중의 우상이 아니었나. 그것이 요즘은 자꾸만 배신감이 느껴진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나. 부잣집 남자를 따라간 옛날 애인에 대한 서운함 같은 것 있지 않나.
―TV에 비치는 이미지부터가 달라졌어. 우리가 마음 속에 담아 둔 DJ는 광복 직후의 이승만이나 백범처럼 지금쯤은 백발에 검은 두루마기 차림의 조금은 수척한 모습으로, 나라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모두가 그의 말 한마디를 기다리는, 현실정치를 초월한 민족적 권위로서의 존재가 아닌가.
―양복주머니에 꽂은 손수건은 또 뭔가. 젊게 보이고 싶은 심정은 알겠지만 그의 「대중경제론」과는 거리가 먼 모습 아닌가. 일산에 새로 마련했다는 저택이나, 용인 근처 어디로 옮겼다는 가족묘 얘기 같은 것도 온갖 고난을 헤쳐 온 민주투사의 이미지와는 영 어울리지 않는단 말이지.
―DJT연대만 해도 그렇지, JP가 DJ에게 누군가. 군사정권의 탄압으로 계훈제씨처럼 몸을 못 가누게 된 민주투사들에게 JP가 누구며 TJ가 누군가. 「수평적 정권교체만 가능하다면」이라는 명분만으로 이들을 위로할 수 있을까.
―위약과 배신은 독재의 속성이라고 조지 오웰이 갈파하지 않았나. 민주정부의 탈을 썼어도 독선적 퍼스낼리티를 벗지 못하는 대통령이라면 정부가 독재적으로 운영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이 문제 아닌가. 지금 나라의 흥망이 걸린 일이 경제구조를 민주질서에 맞게 개혁하는 일인데, 그런 정부에서 그것이 가능하겠느냐는 것이지. 우리도 동남아 꼴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네.
―중국도 위험한 모양이야. 세계은행(IBRD)의 최대 채무국이 중국이라더군.
―미국의 인권시비도 억압받는 중국국민이 불쌍해서 그러는 것 만은 아니라고 봐야 하네. 중국에 동남아 같은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중국에 진출한 막대한 미국자본이 거덜이 날 위험이 있으니, 그 손실을 막기 위해서도 부패한 공산독재정권의 민주화가 급하다는 얘기지.
―우리 경제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나 아니면 안된다는 아집에 빠진 정치인, 대통령이 되자고 당을 만들고 당원 위에 독재적으로 군림하는 정치인, 대통령이 될 수만 있다면 어떤 약속도 뒤집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정직하지 못한 정치인은 안된다는 것 아니겠나. 정치도 망치고 경제도 망치지 않으려면 말일세.
―아무리 그래도 지금 같아선 DJ는 그냥 가만히만 있어도 당선이 틀림없어 보이는데. 어느 여당 중진의원 말처럼 여당이 두쪽으로 갈라져 서로 「환상적인 DJ 선거운동」 경쟁을 하고 있지 않은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