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막스 베버가 남긴 교훈/전성우 한양대 교수(아침을 열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막스 베버가 남긴 교훈/전성우 한양대 교수(아침을 열며)

입력
1997.11.06 00:00
0 0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1864∼1920)는 정치를 직업으로 삼고자 하는 이들에게 그들은 「악마적 힘」과 결탁하게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왜냐하면 정치권력은 다른 어떤 권력도 가지고 있지 않은 무서운 수단, 즉 「합법적 폭력(강제력)」이라는 수단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폭력은 그 속성상 파괴적(악마적) 잠재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정치권력에 관한한 단순한 합법성 이상의 「정당성」을 요구하며 또한 정치권력을 지향하는 자에게는 단순한 직업인 이상의 특수한 자질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자질이 요구되는가.우선 정치가는 합법적 폭력이라는 이 무시무시한 수단을 어떤 궁극적 공동선을 위해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개인, 민족 또는 인류 전체를 「합법적」으로 멸망의 길로 이끌 수도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백악관의 원폭 단추 누르기도 합법적 권력임을 상기하자. 이러한 신념이 없거나 부족한 정치가의 손에서는 권력은 그야말로 「악마적 힘」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막스 베버는 정치가의 일차적 덕목으로 「신념윤리」를 지적한다. 여기서 신념윤리란 아직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지만 정치가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이상과 가치를 뜻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정치가는 단순히 「신념윤리가」로 그쳐서는 안되고, 「책임윤리가」이어야 한다. 여기서 책임윤리가란 자신이 대변하는 신념이 실현될 경우 예상되는 현실적 결과가 과연 자신이 공동체에 대해 책임질 수 있을 만한 것인지를 항상 냉철히 판단한 후 권력을 행사하는 자를 뜻한다.

그래서 흔히 정치는 현실적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불리지만, 다른 한편으로 베버가 지적했듯이 불가능한 것을 지향하지 않는 한 가능한 것 마저도 이룩할 수 없다고 본다. 즉 현실을 뛰어넘는 이상과 신념을 가지지 않는 한 우리는 이 현실에서 가능한 것마저도 성취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는 항상 같이 가는 것이다. 과연 우리의 대선 정치판에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를 겸비한 정치가 집단이 있는가. 적어도 지금은 찾기가 쉽지 않다. 현재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단순히 수단이어야 할 권력이 그 자체 목적으로 둔갑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제 이런 본말전도를 숨기려고도 하지 않는 후안무치가 횡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3김청산, 정권교체, 세대교체라는 구호들도 『「3김」 「영남」 「60, 70대」대신 내가 권력을 잡겠다』는 적나라한 권력욕 외에는 아무런 메시지도 전달하지 않는다. 물론 이 구호들 뒤에는 신념이 있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러한가. 이들이 제공하는 것은 잡다한 신념들의 「폭탄주」에 불과하며, 이들의 의도는 우리를 가능한한 빨리 몽롱하게 만드는 것일 뿐이다. 더욱 더 서글픈 것은, 이들 중 아무도 우리가 깨어난 후의 뒷처리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고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이상 우리로서는 이 폭탄주 돌림에 취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며, 맑은 정신으로 엄격한 기준을 마련해 우리의 선택권을 행사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기준은 역시 신념윤리의 기준이다. 정치권력의 「악마적」 유혹에 빠질 가능성이 그래도 적은 사람은, 자신의 신념을 위해 다른 모든 사적 이해관계를 희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기준은 대선후보뿐 아니라 후보를 떠받치고 있는 주변인물들에게도 더 엄격히 적용되어야 한다.

이 잣대로 분류하면 우리는 두개의 집단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신념의 수호를 위해 고통받은 경험이 있는 이들(적어도 2김은 포함된다)과 3∼6공에서 정치적 야바위꾼으로, 오히려 신념윤리가들이 당한 고통과 희생을 자양분으로 삼아 권력을 「향유」하면서 살아 남은 이들. 만약 우리의 정치발전을 위해 「청산」해야 할 것이 있다면, 3김이 아니라 바로 이 후자의 집단이다. 또 하나 적어도 경계해야 할 세력이 있다면, 전에는 지식인 또는 「학자」였다가 아마추어 정치가로 변신한 집단이다. 정치는 악마와 결탁하는 것이며, 이런 결탁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과학적 진리와 결탁했던 사람들은 상대를 바꾸려면 참으로 냉정히 자신의 자질을 분석해야 한다. 타고난 정치가라는 평을 들었던 막스 베버였지만 스스로 판단 끝에 결국 학문의 길을 택했고 덕분에 현대 사회학이 꽃을 피웠다.

그런데 신념윤리적―책임윤리적 정치가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 인간을 그가 추구하는 가치와 신념에 따라 평가해줄 줄 아는 국민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우리는 과연 그런 국민인가.<정보사회학과>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