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았던 인디언들은 풍경의 변화와 마음의 움직임을 빗대어 달(월)의 이름을 정했다. 인디언 크리크족은 그래서 11월을 「물이 나뭇잎으로 검어지는 달」이라고 불렀다. 낙엽지는 풍경을 묘사한 것이다. 체로키족은 11월을 「산책하기 좋은 달」이라고 불렀다. 11월을 가장 적절히 표현한 것은 아라파호족이 아닌가 싶다. 그들은 11월을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고 한다. 가을의 투명한 햇살도, 풍성한 들녘도, 단풍의 화려한 색깔도 자취를 감추었지만 모두가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11월에는 바로 낙엽이 있기 때문이다. 낙엽에는 냄새가 있고, 소리가 있고, 색깔이 있다. 깊어가는 계절의 정취를 음미하는데 낙엽만큼 좋은 친구는 없다.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으며 사색에 잠겨볼 수 있는 서울 근교의 여행지를 소개한다. 낙엽을 제대로 밟을 만한 곳은 공교롭게도 왕릉 주변이다. 광릉, 동구릉, 공순영릉을 찾았다.
◎광릉/경기 남양주시 진접읍/비로 내리는 관목숲 황금낙엽
광릉은 조선왕조 7대 세조와 정희왕후 윤씨의 능이다. 주산인 주엽산의 울창한 원시림과 인조림으로 이루어진 수목원이 빚어내는 자연의 향기가 그만이다. 신록이 눈부신 5월의 광릉도 좋지만 낙엽지는 가을의 광릉도 놓치기 아깝다. 광릉으로 들어가는 길 옆에 들어선 관목숲의 황금빛 낙엽은 늦가을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전한다. 바람이라도 불면 소나기 쏟아지듯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을 밟으며 걷다보면 영화 「제3의 사나이」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아침 일찍 나서면 아무도 지나지 않은 낙엽길을 호젓하게 걸어볼 수 있다. 광릉수목원이 6월1일부터 부분적으로만 개방돼 수목원의 정취를 제대로 느낄 수 없는 것이 아쉽다. 광릉수목원은 토, 일, 공휴일을 제외한 월요일부터 금요일 상오 9시부터 하오 5시까지 교육, 자연학습 목적의 방문객만 받는다.10일전에 사전예약을 해야하는데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번잡스럽지 않게 수목원을 돌아볼 수 있다(광릉 수목원관리사무소 0357―31―3894).
광릉 근처의 봉선사는 명산으로 꼽히는 운악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봉선사의 대웅전은 「큰법당」이라는 한글 현판이 붙어있는데 이는 유일한 한글 현판이다. 불교대중화에 앞장선 운허(1901―1980)스님의 의지를 잘 보여준다. 법당 안 사방벽에 한글과 한문으로 동판에 새긴 「법화경」을 붙여놓은 것도 이채롭다. 절앞 부도밭에는 운허 스님의 부도와 함께 춘원 이광수의 기념비가 눈길을 끈다. 춘원은 금강산 답사길에 만난 월하 스님의 인도로 「법화경」에 심취하게 됐고 사촌형인 운허 스님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 「원효대사」 「꿈」은 그래서 쓰여진 작품이다. 봉선사에는 조선 전기 동종연구에 중요한 자료인 범종(보물 제397호)이 있다. 정희왕후 윤씨가 봉선사를 중창할 때 세조의 명복을 빌기위해 조성한 것이다. 광릉과 봉선사를 돌아보고 쉬어갈만한 곳으로 고모루문화단지가 있다.
◎공순영릉/경기 파주시 조리면/숲속 아침안개의 신비함
공순영릉에는 조선 8대 예종의 비 장순왕후의 공릉과 9대 성종의 비 공혜왕후의 순릉, 21대 영조 때 세자로 책봉됐다가 10살때 승하한 후 진종으로 추대된 어린 세자와 그의 비가 함께 묻힌 영릉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일찍 서두르면 안개가 피어오르는 관목숲의 신비한 기운을 만날 수 있다. 세 능을 살펴보는데 한시간 정도가 걸린다. 이어지는 길도 공릉, 순릉, 영릉 순서다. 순릉 오르는 길에는 실개천이 흐르고 약수터도 있어 잠시 발길을 멈추어 목을 축일 수 있다. 공순영릉 주변의 반구정과 자운서원도 함께 둘러볼 만하다.
구파발에서 임진각까지 이어지는 통일로초입, 통일로와 교외선이 갈라지는 벽제삼거리 검문소에서 9.7㎞지점에 있다. 공순영릉 관리 사무소(0348―941―4208).
◎동구릉/경기 구리시 동구동/능사이 오솔길서 가을정취
동구릉은 조선왕조의 능묘 중 가장 규모가 크다. 경기 구리시 4개 동에 걸쳐 59만 2,000평에 달하는 넓은 능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을 비롯, 5대 문종과 현덕왕후가 묻힌 현릉, 14대 선조와 의인왕후, 계비 인목왕후가 묻힌 목릉 등 8개의 능과 1개의 묘가 있다. 합장된 왕비까지 합치면 모두 18위가 모셔져 있다. 현재는 6개의 능만 공개되고 있다. 북쪽 깊숙히 자리잡은 건원릉은 억새풀로 떼를 입힌 것이 특이하다. 이는 태조가 고향 함흥을 그리워해 그곳의 억새풀을 옮겨와 심었기 때문. 동구릉의 노송림과 상수리나무숲은 산책하기에 좋은 곳. 능과 능 사이로 난 오솔길을 걸으며 만추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강북에서 가려면 망우고개를 넘고, 강남에서는 올림픽대로를 타고 강동대교를 건너 직진한다. 구리시를 우회, 퇴계원으로 빠지는 육교를 타고 3㎞ 지점인 구리IC로 내려서면 된다. 동구릉 관리사무소 (0346-63-2909)
◎주변의 맛있는 집/고모루 문화단지 카페촌/맛난 음식 먹은후엔 전시회 구경
광릉의 고모루문화단지는 장흥이나 기산계곡, 북한강변길의 카페촌과 사뭇 다른 분위기다. 아직 개발 중이라 훨씬 한산하고 조용하다. 고모루문화단지의 카페는 상설 서화전시장이나 조각전시장, 민예품점을 갖춘 곳이 많다. 인사동같은 명소로 가꾸겠다는 것이 이곳에 입주한 사람들의 생각이다. 파르티타(0357―31―4063)의 주인 차정숙(42)씨는 전시장에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기도 한다. 그림을 감상하다 창밖 가을풍광을 바라보며 한가로움을 즐길 수 있다. 커피는 4,000∼5,000원. 안심 스테이크와 정식은 2만원(후식 포함). 몽고리안 바비큐 1만8,000원. 스파게티 1만3,000원.
산동타운(0357―34―3843)은 숲속 휴양지같은 곳. 1층은 민속음식점, 2층은 레스토랑을 겸한 카페다. 2층은 베란다를 툭 터 열린 공간으로 꾸몄다. 편안한 나무의자에 앉아 가을숲 너머 산마루에 지는 노을을 바라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1층의 민속음식 메뉴는 이동갈비, 돼지갈비(1인분)가 1만5,000원. 오골계(1마리)가 3만원. 2층 레스토랑의 김치, 양송이 볶음밥은 8,000원. 정식 1만2,000원(후식 포함). 칵테일 6,000원.
양지바른 곳에 자리잡은 통나무집 선 밸리(0357―34―1311)에서는 가까운 고모루계곡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별채에 마련된 갤러리에서는 풍경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정통양식 메뉴를 내놓는데 A, B, C코스로 나뉜다. A코스(4만원)는 연어, 바닷가재, 안심스테이크에 후식으로 과일과 음료가 제공된다. B코스(3만원)에는 안심스테이크, C코스(2만원)에는 등심스테이크가 나온다. 세코스 모두 와인이 제공된다. 매일 밤 라이브 공연도 열린다.
고모루문화단지 입구 수목원순두부집(0357―34―0848)의 주인 박순용(43)씨는 이곳 토박이다. 개업한 지 이년째. 살던 집을 개조해 음식점으로 꾸몄다. 매일 아침 박씨가 직접 콩을 갈아 순두부를 앉힌다. 점심 때 맞추어가면 따끈따끈한 순두부를 맛볼 수 있다. 우유처럼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이 일품. 찬거리는 집 근처 텃밭에서 기른 것으로 시골 맛이 그대로 배어난다. 순두부와 함께 내놓는 보리밥에 나물을 넣고 비벼먹는 순두부보리밥(5,000원)도 된장과 고추장의 순수한 맛이 그대로 살아난다. 냄비 가득 담아오는 순두부는 양도 푸짐해 아이를 동반했을 경우 어른 것만 시켜도 된다. 봉평면옥(0357―31―0485)은 막국수 전문집으로 겨울에는 추어탕(6,000원)과 설렁탕(5,000원)으로 메뉴를 바꾼다. 공순영릉 입구에는 공릉갈비집(0348―944―7051), 동구릉 근처에는 산장갈비집(0346―63―6208)이 있다.<김미경 기자>김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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