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동남아·인도까지 항로개척 ‘동방의 로마제국’/한·중·일 사료검증,현장답사통해 탄탄한 논거제시『백제는 지금의 중국 광시(광서)장족자치구에 백제군과 진평군을 설치했다. 중국 연안지역에 일종의 식민도시를 경영하여 거대한 네트워크를 만든 것이다. 6세기 중반 이후에는 기존의 제주도와 기타규슈(북구주), 그리고 혼슈(본주) 일부에 이르는 항로를 연장시켜 오키나와(류큐·유구)와 대만해협, 그리고 필리핀, 인도차이나반도, 인도에 이르는 동남아항로를 개척했다. 특히 항로의 거점지역에 왕족을 파견하여 기항지겸 교역의 중심지로 삼았다. 부여씨 왕족이었던 흑치상지 장군의 조상이 흑치지역(필리핀)에 분봉된 것이 이를 입증한다. 백제의 해외경영은 다양한 인종의 거주와 물산의 집중을 가져왔다. 그리하여 고구려(69만호)보다 더 많은 76만호가 거주하는 대국가가 태동한 것이다』(365, 366쪽).
연세대 강사 이도학(40·경기도 문화재감정위원)씨는 「새로 쓰는 백제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러한 주장은 그리 놀라운 것은 아니다.
사학계 일부에서 백제의 만주지역 및 해상진출 문제는 끊임없이 논의돼왔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한국 중국 일본의 검증된 사료에 대한 문헌비판과 고고학적 발굴성과, 현장답사를 토대로 탄탄한 논거를 제시, 설득력을 더해준다. 『백제는 영토는 작지만 삼국에서 인구가 제일 많았습니다. 영국도 땅은 작지만 해상진출을 통해 대제국이 되지 않았습니까. 백제는 동방의 로마제국이라 할 만합니다』
―그렇다면 백제가 진출한 광시장족자치구나 흑치지역 등은 백제의 영토 또는 식민지 아닙니까.
『영토나 식민지는 아닙니다. 상업거점이었지요』
―왕족이나 장군이 담로로 파견돼 행정력을 행사하지 않았습니까.
『담로가 파견된 지역은 어떤 나라가 영토라고 주장하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원주민이 거주하던 곳이었지요. 이 지역은 영사관같은 기능을 한 것입니다』
이 책은 해명을 기다리는 무수한 백제사의 미스터리를 담고 있다. 『「원사」는 1267년 「백제가 신하 양호를 보내 내조하자 금수를 차등있게 내려주었다」고 적고 있다. 기사대로 한다면 백제 사신을 표방한 양호라는 사람이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를 알현한 것이 된다.
또 「고려사」 성종 4년(984년) 5월조에 의하면 송나라에서 고려 성종을 책봉하고 내린 조서에 「항상 백제의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영원히 장회(양자강과 회수)의 족속을 무성하게 하라」고 하여 백제의 존재가 보인다』(586,587쪽). 13세기와 10세기에 나타나는 백제의 존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씨는 백제연구로 한양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지금까지 백제사에 관한 논문 50여편을 발표했다. 푸른역사 발행, 2만3,000원.<이광일 기자>이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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