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야권 대통령후보 단일화 합의문에 서명한 김대중 국민회의총재와 김종필 자민련총재는 깊은 감회를 숨기지 않았다. 김대중씨는 『우리는 정말 기적과 같은 일을 해 냈다』고 말했고, 김종필씨는 『30여년의 정치역정속에서 비장한 심정으로 내린 결단』이라고 말했다. 「단일후보로 정권교체, 내각책임제로 정치발전」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는 서명식장은 함성과 흥분으로 뜨거웠다.그러나 그들의 감회, 함성과 흥분이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 같지는 않다. 서명직후 국민일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DJP연합의 상승효과는 미미하게 나타났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은 서명이 이루어진 그 순간부터 걱정하고 있다. 성사될듯 말듯 하던 DJP연합이 현실로 다가오자, 그동안 막연하게 인식했던 불안과 거부감도 현실화하고 있다.
가장 큰 거부감은 그들의 나이와 경력에 대한 것이다. 늙었느냐, 젊었느냐, 여자냐, 남자냐는 식의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거나 선입관을 갖는 것은 편견일 수도 있다. 그러나 70대 정치인들의 연대는 그들 각자의 나이와 과거를 더욱 더 강조하고 있다. 며칠전 TV뉴스에 김대중(72)·김종필(71)·박태준(70)씨가 차례로 나와서 그들이 노인의 말투로(때로는 반말투로) 연대의 필요성을 주장했을 때 충격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있다. 갑자기 무슨 노인공화국인가, 진취적으로 미래를 개척해 나가야 할때 70대의 정객들이 손을 잡고 나라를 이끌겠다는데 과연 괜찮을까 라는 불안을 느꼈다고 그들은 말했다.
그들이 걸어온 노선이 너무나 이질적이라는 점에 대한 불안도 크다. 1961년 김종필씨가 5·16쿠데타의 핵심세력으로 등장했을 때 김대중씨는 강원도 인제의 보궐선거에서 갓 당선한 초선의원이었다. 30대에 그렇게 만난 두사람은 한평생 결코 화합할 수 없는 정치노선을 걸어 왔다. 거듭되는 생명의 위협속에서 김대중씨가 평생을 바친 민주화 투쟁은 바로 군사독재와의 싸움이었고, 김종필씨가 보는 김대중이란 인물은 항상 「안정을 해치는 위험세력」이었다.
각각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면서 숙명적으로 대결했던 두사람은 정권교체라는 헌정사의 숙원을 풀겠다는 명분아래 손을 잡았다. 그들은 DJP연합을 민주화 세력과 산업화 세력, 진보·개혁 세력과 보수·경륜세력의 결합이라고 자부하면서 박태준씨가 합세한 이른바 DJT연합으로 호남·중부·영남을 망라하여 지역감정을 극복하는 호기를 맞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은 그 어떤 역전의 드라마에도 감동을 상실한지 오래다. 김대중·김종필씨가 36년간의 사무친 악연을 풀고 정권교체를 위해 손을 잡았다는 것도 당사자들에게는 극적이지만 대다수의 국민에게는 호소력이 없다. 많은 사람들은 노태우·김영삼·김종필씨가 손을 잡고 민자당을 만들던 광경을 연상하면서 DJP연합이 앞으로 얼마나 많은 갈등을 겪게 될지 미리 걱정하고 있다. 연대가 깨지고, 서로 싸우고, 그러는 사이에 나라가 골병들게 될 일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신물이 난다는 사람도 있다.
두 당이 제시한 내각제로 가는 일정도 제대로 지켜질지 의문이다. 김대중씨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즉각 내각제 개헌추진위를 구성하고, 99년 9월 개헌안 공고, 10∼11월 국회 의결, 12월 국민투표, 2000년 4월 16대 총선, 6월 국회구성과 내각제정부 출범을 이룬다는 것이 그들의 계획인데 김대중씨가 대통령으로 있는 2년반 동안은 결국 내각제 준비로 시끄러울 것이 뻔하다. 경제가 매우 어렵고, 국제사회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남북관계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런 정치일정이 가능할지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여권에서는 두 당의 연합을 70대의 노정객들이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야합이라고 맹렬하게 공격하고 있다. 그런 공격에 동의하는 사람, 정권교체를 위한 야권후보 단일화를 높이 평가하는 사람, 대통령제에 찬성하는 사람, 내각제 개헌에 찬성하는 사람 등 저마다 견해가 다를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목말라 하는 것은 어떤 나라를 만들어 갈 것이냐는 비전의 제시다.
DJP연합도 그 자체가 목표일 수는 없다. 노인공화국이라는 냄새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일정만 봐도 골치가 아파지는 내각제 개헌 절차를 과연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는지, 그 수많은 강을 건너고 산을 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DJP가 깨질 때의 혼란을 미리 지겨워하는 국민들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느냐가 DJP의 숙제다.<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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