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물가수준 세계 3위/월급이 올라도,수입이 늘어도 가계부는 적자,또 적자/‘물가걱정 없는 세상서 살순 없을까…’뼈빠지게 벌어봤자 쓸 돈이 없다. 월급이 올라도, 수입이 늘어도 표가 안난다. 고물가 때문이다. 알게 모르게 야금야금 올라버린 물가가 서민생활을 더욱 고달프게 하고 있다.
정부가 집계한 전년말 대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9월까지 3.8%. 절대 수치상으로는 그리 높지 않다. 그러나 각종 체감지수는 이를 훨씬 넘는다. 신선 식품만을 대상으로 한 상승률은 12.1%, 월 1회 이상 구입하는 상품의 상승률은 6.0%에 달한다. 공공서비스나 개인서비스 요금도 각각 6.2%와 4.4%씩 올랐다.
LG경제연구원이 조사한 체감물가(피부물가) 상승률은 9월 현재 4.9%. 한국갤럽조사연구소의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6.2%가 정부가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지수를 믿을 수 없다고 답했다. 체감 물가가 정부 발표와는 상당한 격차가 난다는 얘기다. 게다가 최근의 환율급등과 코앞에 다가온 대통령선거는 물가의 추가상승을 예고하고 있어 올 겨울 서민생활은 70년대 오일쇼크 때보다 더 추워질 전망이다.
서울 방화동의 주부 노성숙(49)씨. 『돈이 물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10만원을 가지고 시장을 가도 이것 저것 사다 보면 금세 없어져 버려요. 한번 장보는 데 2만∼3만원 드는 건 보통이에요. 1만원이 예전의 1,000원 보다도 못한 것 같아요. 그런데 환율 때문에 물가가 또 오른다고요?』
회사원 박성우(35)씨. 『용돈 1만원으로 하루를 보내기가 빠듯하다. 아무리 싼 음식도 4,000∼5,000원이 보통이니 점심 한끼 먹는 것도 부담스러울 때가 많다. 후배들에게 점심 한번 사기도 힘들다. 점심 후 차 한 잔 마시는 데도 2,000원 이상이 들고 교통비와 담뱃값 등을 제하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어쩌다 간단히 술 한 잔 하려해도 지갑을 들여다 봐야 한다. 적어도 3만∼4만원은 들기 때문이다. 물가가 오른다면 무엇을 줄여야할 지 모르겠다』
서울 개포동 구룡마을에 사는 최재규(40)씨. 『없는 사람한테는 대중교통 요금도 무시 못할 부담인데 지하철요금이 또 오를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벌이는 나아지는 게 없고 물가만 오르니 점점 살기가 힘들어진다』
남대문시장 관리사무소 백승학씨. 『그동안에도 불경기로 장사가 안됐는데 물가가 또 오르면 손님이 더 줄어들까봐 걱정이다. 마진도 지금보다 더 떨어질 것이다』
지금도 소비자 물가는 다른 나라보다 엄청나게 높은데 환율 때문에 앞으로 휘발유 곡물 등 1차 소비재와 서비스요금 등 각종 물가가 더 오르게 된다니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걱정들이 태산이다.
실제 90년 이후 올 3월까지 한국의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45.9%로 일본(7.2%), 미국(22.7%), 독일(22.9%), 영국(24.9%), 대만(23.2%), 싱가포르(16.7%) 등에 비해 2배 이상 높다. 세계주요도시 소매물가 비교(뉴욕=100)에서도 서울의 물가수준이 115로 홍콩(187)과 도쿄(135)에 이어 세계 3번째를 차지했다.
물가가 높으니 생활비는 자연 많이 들 수 밖에 없다. 스위스 국제경영연구소(IMD)의 각국 생활비 수준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뉴욕에서의 생활비(주거비 제외)를 100원으로 보았을 때 동일한 수준의 생활을 하려면 한국에서는 103.46원이 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조사대상 46개국 중 15번째. 대만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국가보다 훨씬 높은 것은 물론, 미국 도시평균의 1.15배, 캐나다의 1.28배, 영국의 1.06배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더구나 생활비 지수는 94년 92.22에서 95년 107.39로 계속 높아지는 추세다. 제네바 기업정책그룹(CRG) 연례보고서에서도 주거비를 포함한 서울의 생계비 수준은 세계 145개 도시 가운데 7번째였다.
이같은 고물가로 인해 가정경제는 점점 악화하고 있다. 대우경제연구소는 『97년 전국 3,000가구를 대상으로 경제상태를 조사한 결과 지난해 가계경제가 나빠졌다는 가구가 전체의 36.4%로 94년의 28.2%에 비해 8.2%포인트 증가했다』며 『전체의 42.9%가 그 이유로 물가 상승을 꼽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최소한 빚을 안지고 생활할 수 있는 주관적인 최저생계비 수준도 93년 88만1,000원에서 지난해 129만9,000원으로 47.4%나 증가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서민들의 빈곤감은 더 커져가고 웬만큼 버는데도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소위 「신빈민족」을 자처하는 중산층 가구도 늘고 있다.
끝을 모르는 대기업 연쇄부도, 중소기업 조업중단, 주가폭락, 외채증가, 환율폭등, 사상 최악의 취업난과 고실업률, 물가상승 …. 계속되는 어려움 속에 서민들의 한숨소리는 자꾸만 높아져 간다.<배성규 기자>배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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