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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진국으로 가는 길/김종규 삼성출판사 회장(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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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진국으로 가는 길/김종규 삼성출판사 회장(아침을 열며)

입력
1997.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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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선진국」이 반드시 「문화국」은 아니다. 선진국과 후진국은 경제발전에 따른 구분이다. 때문에 경제개발도상국이라는 말이 「중진국」 대신에 쓰이기도 하였다. 후진국에서 벗어나고 선진국 대열에 다가간 나라에 대한 호칭으로 「개도국」이라는 말이 우리나라에서도 유행하였다.선진국은 어디까지나 공장을 돌리고 산업을 일으킨 자본주의 국가의 위력을 과시하는 언어일 뿐이다. 그러나 문화국은 다르다. 「선진국이면 바로 문화국이고, 잘 사는 선진국이 아니면 문화국이 아니다」라는 의식이 근래 자리잡고 있음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는 분명 문화국이다. 반만년 아니 구석기 문화를 포함하면 30만년의 문화를 향유한 문화국이다. 국민소득 1만달러에 이르고, 산허리와 들판을 가로질러 고속철도를 놓아 1시간대에 부산에 닿는다는 것 등이 선진국의 모습이라면 석굴암을 창건하고 훈민정음을 창제하며 고려청자를 빚어낸 것들이 바로 문화국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앞으로 이 용어를 분명히 가려서 써야한다. 우리는 경제적인 부분에 치중하다 보니 선진국 대열에 끼었지만 아직도 비문화국이라고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또 선진국도 아니고 문화국도 아닌 형편없는 나라라고 스스로 비하하는 저자세를 갖고 있지는 않은가. 이것이 사실이라면 참으로 큰 일중에도 큰 일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이상적으로 살려는 것은 인간의 지상 최대목표다. 그런데 오히려 「선진국으로 치달음」탓에 사회는 황폐화하고 환경은 죽어간다. 이 무슨 짓인가. 맑은 물과 공기, 깨끗한 하늘과 상큼한 산이 사라져 가고 영혼과 육체의 땅 대지가 이물질로 덮여가며 오존층이 구멍난다고 하니 말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환경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의 도리와 삶과 생명을 갉아먹는 경제개발의 「선진국」이 「선진국」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되는 탓이다. 어찌 이를 「문화국」이라 할 수 있는가.

이제는 겉모습만 화려한 선진국은 전통문화의 바탕이 없으면 결코 살아날 수 없다. 아울러 각 나라의 문화전통에 의한 국가 경쟁력을 내보일 때 국제사회에서 대접받을 수 있고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런 의미로 「문화선진국」이라는 말을 쓸 수 있겠다.

문화란 알다시피 인간이 지닌 높은 정신의 소산물이다. 각 민족의 유산이 얼마나 뛰어나고 보전할 수 있느냐에 따라 문화국이 될 수도 있고 비문화국으로 남을 수도 있다. 문화유산은 모두 민족마다, 시대마다 다른 특징과 독창성을 내보이는가 하면 인류 공통성, 보편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때문에 이를 통하여 서로 인류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공유하는 대열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와 유산이 없거나 내세울 만한 게 없는 나라는 인류공존, 공영의 이상화 대열에서 소외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일찍이 나라와 민족이 나아갈 길을 보여주었던 백범 김구(1875∼1949) 선생은 저서 「나의 소원」에서 문화의 소중함을 이렇게 외쳤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요, 경제력도 아니다. 자연과학의 힘은 아무리 많아도 좋으나 인류전체를 보면 현재의 자연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갈 수 있다. …인류의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95년말에 석굴암과 불국사, 팔만대장경판전, 종묘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으며 지난 9월에는 또 훈민정음과 조선왕조실록이 여기에 등록되었다.

앞으로 백범 선생의 말씀처럼 우리 민족이 세계를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는 어느나라나 민족보다 높은 문화의식과 인식이 먼저 있어야겠다. 우리 유산뿐만 아니라 당장 의식없이 파괴되어 가는 갯벌이나 철새도래지의 모래톱, 갈대밭과 생태계의 보고인 늪지대와 숲을 그대로 보고 있을 수 없다. 인간은 결코 자연을 버리고선 창조적 존재가 될 수 없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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