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축구예선과 더불어 축구열풍이 어느 때보다도 세차게 한반도를 휩쓸고 있다. 경기에서 이기는 건 좋은 일이다. 지면 누구나 실망하기 마련이다. 열광적인 환호 속에서 승리의 축배를 드는 군중의 마음은 이 순간만은 최상의 희열 속에 하나가 된다. 그러나 최선을 다 해 뛰었는데도 졌다면 어떻게 될까. 이성이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 아마 단순한 실망을 넘어 원망과 비난이 시작되다가 「누구 탓이다」라고 할만한 대상을 찾아서 집중적으로 공격함으로써 속죄양이 된 대상을 물러나게 만들고자 할 것이다. 일본축구팀처럼 말이다.군중심리란 대개 이렇게 황당하다. 상대방을 영웅시하여 열렬히 지지하다가도 같은 기세로 비난과 매도를 퍼부어 그를 매장시키곤 한다. 이들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는 상황에 있다. 자기들의 무의식의 원형상들을-한번은 그 밝은 면을 다른 한번은 그 어두운 면을 그 대상에 투사시켜 열광적으로 거기에 의지하거나 배척하고 있는 것이다.
집단적 「열풍」이니 「열광」이니 하는 것은 신나고 후련하고 좋지만 다른 한편 매우 해로운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현실상의 필수적인 부분인 어둠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열광 속에서 사람들은 전체의 실상을 보지 못한다. 승리의 뒤안길에 패배의 그늘이 있고 정의의 빛속에 부정의 어둠이 있음을 못보게 된다. 그러므로 열광주의가 창조적인 결과를 얻으려면 집단적 열풍 속에서도 꺼지지 않고 피어있는 개개인의 자각된 비판의식, 즉 「이성」이 살아있어야 한다. 다행히 우리 축구팬들은 요즘 그 「이성」을 갖추고 관전에 임하기를 다짐하고 나섰으니 반가운 일이다.
인류가 어느만큼 집단심리의 암시적 효과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지는 미지수이다. 최고교육을 받은 사람도 집단 속에서는 폭도가 될 수 있다. 축구판의 군중심리와도 비슷하면서 특이한 정치판의 집단현상을 들여다 보면 놀랍게도 우왕좌왕하는 정치인들의 이합집산을 지배하고 조정하는 것이 축구판처럼 감독이나 선수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후보자의 정치적인 소신이나 정당의 정강정책도 아니다. 그것은 매우 과학적인 듯이 내세우며 어느날 갑자기 대중매체에 등장한 유권자의 지지율이라는 낮도깨비같은 괴물이다. 대중매체는 이 흥미있는 괴물의 위력을 결코 놓치지 않고 활용함으로써 시시각각 대중에게 암시를 주고 있으며, 소위 지지율에 솔깃한 나머지 민주주의원칙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지율이 떨어졌으니 누구는 그만두고 나가라는 사람들도 있다. 도대체 통계숫자가 무엇이길래 갈팡질팡한단 말인가.
합리주의와 과학정신이 아직 성숙하지 못한 사회일수록 통계숫자는 「객관적 수치」로써 맹신과 숭배의 대상이 된다. 이 경우 숫자는 새로운 신으로 군림하여 사람들의 행태를 좌지우지한다. 「시청률」이라는 별로 신뢰성없는 숫자에 꼼짝없이 묶여서 과감한 프로개편을 못하는 방송사도 비슷한 「통계병」을 앓고 있다.
인간의 마음에 대한 조사에서 절대객관적 통계수치란 있을 수 없다. 더구나 지지율이라 하는 것은 정강정책에 대한 충분한 홍보와 숙고 아래서 이루어졌다기 보다 개인적이고 정서적인 「인기도」에 불과하다. 그러한 인기도를 바탕으로 정계가 왔다갔다 하면 21세기 우리나라의 국내외 정책방향에 대한 심도있는 토론과 이를 바탕으로 한 유권자의 선택기회는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유아적 욕구를 채움으로써 국민의 의식을 잠재우는 정치보다 국민의 의식을 높은 단계로 이끌 수 있는 정치를 바라고 있다. 우리의 인정어린 문화전통은 아름다우나 21세기에 선진국대열에 들어서려면 좀 더 이성을 키워야 한다.
늦가을의 광풍이 거리의 나무들을 휩쓸고 지나가고 세계의 증권시장이 곤두박질하며 세기말의 불안과 값싼 탐욕과 무질서와 나태함이 팽배한 이때, 그래도 나는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세상이 뭐라해도 이성적 판단과 신념으로 자기의 갈길을 의연히 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대중은 무엇이 옳은지에 대한 판단력과 실천력에서 많은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다.
기대했던 한일축구전에서는 우리가 졌다. 그러나 붉은 옷의 응원단은 이성으로써 패배의 서운함을 이겨냈다. 또한 실패와 난관을 값진 교훈으로 삼아 차범근감독과 선수들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냉철한 과학적 연구와 뜨거운 신념으로 최선을 다할 줄 믿고있다. 이러한 점은 오늘의 정치지도자들이 배워야 할 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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