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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부도로 ‘금융 아노미’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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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부도로 ‘금융 아노미’ 상태

입력
1997.1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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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금사 일방적 자금회수 협조융자협약 사실상 폐기/‘정부부패’ 신화마저 깨지고 일부종금사 부도임박설해태그룹의 부도로 협조융자협약이 사실상 무용지물이 되면서 금융시장이 개별기관의 기업사냥만이 난무하는 「아노미(Anomie)」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금융시장에서 건전한 규칙과 조정자가 사라진 것이다.

2일 금융계에 따르면 지난달 21일 강경식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장관과 금융기관장들이 만나 『기업의 흑자부도를 막겠다』며 제정키로 합의했던 협조융자협약이 협약대상 제1호였던 해태그룹의 좌초로 무산됐다.

주간사 은행으로 협약안을 준비해온 상업은행 관계자는 『해태그룹이 은행권에서 1,500억원규모의 협조융자를 받고도 종금사의 일방적인 자금회수로 쓰러졌다』며 『돈은 돈대로 들어가고 회사가 망해버린 상황에서 은행만 희생당하는 협약을 더 이상 추진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은행감독원도 협약의 필요성은 일부 인정하지만 시중은행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다면 『억지로 강제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라고 밝혀 협약안이 무산됐음을 사실상 인정했다. 사문화한 「부도유예협약」의 후속타로 재경원이 고심끝에 내놓은 회심작이 빛도 보지 못하고 용도페기된 것이다. 이와 함께 『연쇄부도의 고리를 12월 대선전까지는 끊어보겠다』는 정치색 짙은 의지도 물거품으로 변했다.

금융권은 재경원의 의지가 무참하게 꺾인 현재 상황을 「금융 아노미」라고 규정하고 있다. 금융시장이 난맥상을 거듭하면서 「개인의 욕구충족 행위를 조정하는 규범이 사라져 사회전체가 혼란에 빠져버린 상황」을 가리키는 「아노미」라는 사회학 용어가 경제용어로 등장한 것이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그동안 한국 금융시장은 「대기업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는 대마불사, 「정부정책은 아무리 이상해도 언제나 관철된다」는 정부불패의 신화가 지배했다』며 『이제 협조융자협약까지 무산됐다는 것은 대마불사의 신화가 깨진데 이어 그나마 명맥을 잇던 정부불패의 신화도 마침표를 찍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금융 아노미」상태가 지속될 경우 금융기관의 단세포적 여신회수작업이 가속화돼 기업부도사태가 재연되고 종국에는 금융기관도 함께 망하는 상황까지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종금업계에서는 대규모 부도사태와 환율폭등에 따른 외화차입 중단으로 경영난에 빠진 일부 종금사의 부도임박설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시중은행의 또 다른 임원은 『해태의 몰락은 종금사들이 수차례 여신회수자제 선언을 해 놓고도 「나부터 살고 보자」는 식으로 9월이후 1,200억원 가량을 회수했기 때문』이라며 『정책당국이 금융시장을 지배하는 새로운 규범이나 정책대안을 내놓지 못할 경우 금융기관간 공멸 경쟁은 더욱 극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조철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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