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넘길 수 있을까” 매일 급전 마련 사투/체임 다반사·휴폐업 속출/“이렇게 질긴 불황은 처음”공업단지가 신음하고 있다. 장기불황에다 설상가상으로 대기업 연쇄부도, 금융·외환위기, 정권말기의 정국불안 및 행정공백이 겹치면서 국가경제의 기초가 되는 중소제조업이 뿌리째 말라들어가고 있다. 중소제조업체들이 밀집해 있는 전국의 공단들은 마당에 풀이 돋고 기계에 녹이 슬고 먼지가 앉아 폐허 처럼 황폐해져 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주요 공단의 실태를 심층취재, 시리즈로 보도한다.<편집자 주>편집자>
【반월·시화공단=남대희 기자】 기아자동차에 엔진부품을 공급하는 경기 안산시 반월공단내 A기공. 정문에는 「(10월)28일부터 (11월)3일까지 임시 휴업」한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불꺼진 공장에는 엔진부품 소재를 찍어내는 다이캐스팅기(알루미늄 사출기) 8대가 희뿌연 먼지를 뒤집어쓴채 놓여있다. 기아그룹이 부도유예협약 대상기업으로 지정된 후 이 회사에 알루미늄 덩어리(괴)를 공급하던 원자재업체들이 어음결제를 거부하며 납품을 중단하는 바람에 3대만 가동됐던 다이캐스팅기는 기아 노조의 조업중단과 동시에 아예 멈춰버렸다.
기아 협력업체 8백여개사가 입주해있는 안산의 반월·시화공단은 정부의 각종 지원대책에도 불구하고 한숨소리가 가득하다. 정부의 법정관리방침 발표와 동시에 기아 노조가 조업중단에 들어가자 공단내 79개 1차 협력업제중 기아에 전량 납품하는 31개사는 대부분 공장 문을 닫아놓은 상태.
지금까지 부품이 제때 조달되지 않아 단축 조업해왔던 협력업체들은 기아의 조업중단이후 적게는 이틀에서 많게는 2주일까지 「동반 휴업」을 하고 있다. 2·3차 협력업체들도 상당수가 가동라인을 축소하거나 야간근무를 폐지하는 등 조업단축에 들어간 상태다.
『사업 꾸려나가기가 힘들어 자살했다는 중소기업 사장 얘기가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이렇게 질긴 불황은 처음이에요. 숨이 탁탁 막힙니다』 기아자동차에 부품을 납품해온 김모(53)씨는 창업 17년만에 처음으로 직원들에게 2개월째 봉급도 주지 못했다며 눈물까지 글썽였다.
기아 납품률이 20% 정도 밖에 안되는 프레스 용접업체 D기공도 야간 근무를 없애고 대우자동차 만도기계 등 다른 거래처에서 선수금을 받아 가까스로 공장을 돌리고 있는 형편. 최근 거래은행에 20억원의 자금지원을 요청했지만 최종 결정은 자꾸 늦춰지고 있다.
차시트를 납품하는 D산업도 기아사태이후 매출이 40%이상 떨어지고 자금줄이 막혀 최근 상여금 1백50%를 지급하지 못한데 이어 지난달 28,29일 이틀간 임시휴업했다. 자동차 머플러를 생산하는 W공업도 11월 애프터서비스(AS) 물량을 미리 생산하느라 7개반중 5개반만을 가동하고 있다.
이들 협력업체 사장들은 은행과 기아 본사, 할인율이 연 30%를 넘는 사채시장 등으로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어음결제 대금을 마련하기 위해 눈물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 그동안 운영자금을 동원하기 위해 공장과 기계는 물론 임직원과 친지들의 부동산까지 담보로 저당잡히는 등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한 상태여서 더이상 버티는데 한계를 느끼고 있다.
공장전문 중개업소에는 팔 물건만 쌓이고 있다. 21세기중개소 유인석 사장은 『기아 협력업체중 자금난을 견디다 못해 공장을 내놓거나 공단에서 분양받은 부지를 반납하는 업체가 나오고 있지만 사려는 사람은 거의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한국산업단지공단 서부지역본부에 따르면 반월공단은 9월말까지 생산실적이 5조8천6백52억원으로 작년 동기(6조6천4백68억원)의 88%, 시화공단은 4조9백9억원으로 작년 동기(4조8천6백83억원)의 84%에 불과했다. 수출실적도 시화의 경우 작년의 78%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기아 협력사가 전체 입주업체의 30%를 차지하는 반월·시화공단은 기아 사태로 인해 빈사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기아 쇼크가 일파만파로 번지면서 공단주변 상가도 개점 휴업상태를 면치 못하는 등 안산지역 경제 전체가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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