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는 단속피해 평택·파주 등 탈서울 바람미아리 텍사스, 천호동 텍사스, 청량리 588과 용산 영등포 등으로 흔히 구분되는 서울의 「5대 사창가」. 붉은 등이 꺼지지 않던 이들 윤락업소가 당국의 단속과 강제 철거로 심각한 존폐위기를 맞고 있다. 인도와 차도를 가리지 않고 몰려나와 집단으로 호객행위를 하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창문에 드리워진 커튼 사이로 간간이 얼굴을 내밀며 고객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 단속이 시작된 천호동 지역은 하오 8시가 되면 대대적인 경찰 병력이 배치되기 시작한다. 강동경찰서 의경과 형사들로 구성된 단속반은 하루 150명이 투입된다. 단속반이 들어서면 이 지역은 깊은 정적으로 빠져든다. 경찰관은 업소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에게 『윤락행위시 업주와 고객이 모두 처벌된다』고 고지한다. 당연히 손님이라곤 구경하기 힘들다. 업소들은 창문마다 커튼을 달아 불빛이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게 하고 있다. 「삐끼」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간혹 지나가는 사람들을 뒷문으로 안내하려 하지만 경찰 때문에 여의치 않다. 170곳 정도 되던 업소 수는 단속 이후 60여개로, 「아가씨」들도 1,200∼1,300명에서 400∼500명 정도로 대폭 줄었다. 상황이 이렇자 단속이 시작되기 전 시간까지는 가히 필사적으로 영업에 나선다.
지난 28일 하오 2시께 취재팀의 차량이 지나가자 짙은 화장과 야한 복장의 여성 10여명이 길을 막았다. 자동차 번호판을 떼어 내기도 했고 아예 자동차문을 열고 올라타기도 했다. 이들은 『밤장사를 못하기에 요즘은 언제고 지나가는 사람만 있으면 무조건 붙잡는다』고 푸념했다. 지난 29일 일부 업소가 철거된 신길동은 지역 전체가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철거가 진행중이라 업주, 삐끼들과 경찰관 사이에는 살벌한 기운마저 감돌았다. 취재팀이 신분을 밝히자 삐끼들은 『언론이 우리를 다 죽여놓았다』고 욕과 삿대질을 했다.
「식품위생법 위반혐의로 영업중지」라는 영등포구청의 딱지가 업소마다 부착돼 있었고 많은 집들이 아예 문을 걸었거나 「점포임대」나 「세놓음」광고를 붙여 놓았다. 지난해 11월부터 경찰이 단속해온 신길동은 무허가 건축물과 증·개축 건축물에 대해 철거가 진행중이며 철거대상이 전체 업소로 확장될 전망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한 여성은 『업소의 절반 이상이 영업을 포기했거나 지방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말했다.
「미아리」는 그래도 상황이 나은 편이다. 종암경찰서는 일반 손님에 대해서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 대신 업주의 호객행위와 미성년자 출입 및 고용은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입구에는 경찰관 2∼3명이 감시하고 윤락녀들은 커튼 뒤에 몸을 숨기고 있다. 한 집마다 2∼3명 정도의 삐끼들만 골목을 가득 메우며 고객을 기다린다. 다른 곳에 비해 단속이 소극적이라 전체적인 규모나 종업원 수가 줄어들지는 않았다.
이밖에 청량리, 용산, 영등포 등은 아직 이렇다 할 단속이 벌어지지 않고 있어 예전과 달라진 게 별로 없다. 「청량리 588」은 일하는 여성들이 업소 밖으로 나오지 못할 뿐 문을 열고 보란듯이 고객을 유혹하고 있고 용산과 영등포 역 부근의 윤락가도 규모는 작아졌지만 여전히 대낮부터 영업을 하고 있다.
단속을 피해 지방으로 내려간 업주와 종업원들은 경기 평택과 파주로 많이 흘러 들었다. 평택은 올해 들어 30여곳이 늘어났고 신축공사 중인 건물이 많아 탈서울 윤락녀의 규모를 짐작케 했다. 파주 용주골도 지난해 68곳이던 업소가 84곳으로 늘어나는 등 윤락촌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염영남 기자>염영남>
◎지역따라 매춘단속 ‘들쭉날쭉’/검·경찰서 개별실시/법규적용도 제각각/처벌 형평성 문제소지
사창가를 단속하는 정부 당국의 일정한 잣대가 없다. 같은 윤락행위에 대해서도 지역에 따라 처벌이 다르다. 단속이 심한 지역이 있는 반면, 단속 자체가 아예 없는 곳도 있다. 관련 법률도 윤락행위방지법과 식품위생법, 청소년보호법과 건축법 위반 등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적용하고 있다.
철거까지 강행한 신길동 지역은 서울지검 남부지청과 영등포구청, 경찰서 합동으로 단속은 경찰, 행정처분은 구청, 처벌은 지청이 나누어 맡았다. 무허가건축물과 무허가 증·개축 건축물은 철거하고 다른 업소는 식품위생법위반 혐의로 영업을 정지시켰다. 단속망을 피했다 해도 경찰이 손님들에게 윤락행위방지법을 거론하며 출입을 봉쇄하고 있다. 식품위생법상 무허가 업소에서 영업하다 적발된 업주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5년 이하의 징역을 받는다.
천호동 윤락가에는 단속 경찰관을 대량으로 투입해 공포분위기를 조성, 윤락가를 고사시키는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입구에서부터 행인들을 검문하며 윤락행위시 처벌과 가족에게 공개할 것임을 고지한다. 업주들에 대해서는 매춘행위가 적발될 경우 윤락행위방지법에 의거해 처벌하고 있다.
미아리 일대는 청소년보호법에 근거한 단속활동을 벌이고 있다. 미성년자 고용 및 출입을 규제하고 있고 적발시에는 업주는 구속되며 최고 200만원의 벌금을 물린다. 또 호객행위를 금지하고 있어 적발되는 업소는 영업정지 처분을 받는다.
그러나 청량리, 용산 등의 사창가는 별다른 단속을 하지 않고 있어 단속의 형평성이 없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검찰의 한 고위간부는 『지금의 사창가 단속은 해당 검찰청이나 경찰서에서 개별적으로 하는 것이지 마치 전 검·경 차원에서 사창가와의 전쟁을 선포한 뒤 대대적으로 단속을 벌이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염영남 기자>염영남>
◎‘텍사스촌’ 철거 신길동 두 표정/업주·윤락녀 등 “허가할땐 언제고 생계대책도 없이…”/인근 주민들 “주택가의 골칫거리 없애는 것은 당연”
서울 신길동 「텍사스촌」에 대한 당국의 철거작업이 진행되던 지난 29일. 철거현장 곳곳에서 윤락업소 업주들의 불만 가득한 목소리가 튀어 나왔다.
『허가할 땐 언제고 지금 와서 철거가 웬 말이냐』 『우리는 어떻게 살라는 말이냐』 『최소한의 생계 대책이나 보상은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 끝까지 버티던 한 업주는 LP가스를 틀며 철거에 맞서 한바탕 소동이 일기도 했다.
업주들은 『30여년간 별 탈 없이 영업을 해왔는데 왜 지금 와서 갑자기 철거하느냐』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권리금으로 낸 1억∼1억5,000만원은 어디서 돌려 받아야 하느냐는 것이다. 이곳에서 30여년을 생활했다는 한 업주는 『그동안 묵인해 오던 당국이 갑자기 철거에 나선 것은 선거를 앞둔 인기정책이 아니냐』며 『이 장사를 때려치고 싶어도 최소한의 생계대책은 있어야 되지 않느냐』고 정부의 보상을 주장했다.
1년째 단속이 이뤄지고 있는 천호동 업주들도 『미아리나 청량리 등 대형 윤락가는 단속이 뜸한데 왜 하필 우리만 죽이려 하느냐』며 단속의 형평성을 내세웠다. 일부 업주들은 『돈 있는 사람들이 가는 퇴폐 유흥업소는 놔두고 서민들이 돈 몇만원에 스트레스 푸는 이곳만 때려 잡느냐』며 당국의 단속에 노골적으로 반발하기도 했다.
이곳에서 일하는 여성들도 걱정이 가득했다. 천호동의 한 윤락녀는 『장사도 안되는데 왜 떠나지 않느냐』는 질문에 『가면 어딜 가겠느냐. 돈 벌어 먹고 살려면 이 짓 말고는 할 일이 없다』고 푸념했다. 이곳에서는 최소한 월 300만∼400만원은 보장되는데 다른 곳에서 이런 돈을 어떻게 버는냐는 것이다. 신길동의 한 여성은 『곧 철거와 단전·단수가 시작되는데 어디로 가야 할 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사창가 사람들의 항변에 대해 인근 주민들은 『말도 안되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주민들은 『반라 차림의 아가씨들이 대낮에도 호객행위를 일삼아 낯뜨거워 지나다닐 수도 없다』며 『철거는 당연한 조치』라고 환영했다. 아이들 교육에 안 좋은 것은 물론이고 소위 「오빠」라고 불리는 깡패들이 버티고 있어 어른들도 안심하고 다니지 못할 정도라는 것이다.
신길동 「텍사스촌」 부근에 사는 안모(50)씨는 『인근 학교 아이들은 이곳을 피해 시장쪽으로 돌아서 다니는 형편』이라며 『호객하는 아가씨를 뿌리치다 깡패들에게 폭행당한 주민들도 있다』고 말했다. 안씨는 경찰에 진정서를 넣으려 해도 깡패들에게 협박을 당할까봐 도리가 없었다고 치를 떨었다. 주민들은 『주민생활과 교육환경을 위해 주택가에 위치한 사창가는 당연히 사라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배성규 기자>배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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