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여당이 「해체」의 길에 들어섰다 한다. 선거일이 40여일 앞으로 다가왔는데, 난데없는 탈당 시리즈가 진행중이다.한편에선 DJP연합이 뜬다. 승복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든 없든 그 기세는 파죽이요 탄탄대로다.
집권여당이 모처럼 당내경선을 통해 뽑아놓은 대통령후보는 힘 한번 제대로 써볼 겨를없이, 계속 이리 뜯기고 저리 몰리며 굴러가고 있다. 그는 집권여당 후보로서의 프리미엄이나 기득권을 모두 포기하겠노라고 진작 선언한 처지지만, 그런 선언 이전부터 그가 집권여당 후보였던 일이 언제 한번이나 있었던가 싶다. 여당 아닌 야당후보 같다는 인상을 주어온 것이 그와 그의 주변이 만들어낸 이미지다.
『지금 여권은 청와대와 당내 주류 및 비주류, 그리고 이인제 신당이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대통령당선을 위해 이상적이고 환상적인 선거운동을 해주고 있는 상황이다.』
이 말은 신한국당 당내경선에서 이회창 후보의 경쟁자들중 한 사람이던 최병렬 의원이 최근 어느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했다는 현실진단이다. 집권여당은 물론 청와대조차도 이회창 후보를 돕기는 커녕 그 반대의 결과를 돕는 일을 하고있지 않으냐는 강한 반문이 담겨있다.
며칠 전에는 대구의 한 공개 행사장에서 이 후보의 부인이 울어버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다. 사소한 일이지만 결코 사소하지만은 않은 대목이 있다. 그의 울음을 자극한 한 의원의 인삿말이 이랬다고 한다.
『경선으로 대선 후보를 잘 뽑아놓고는 이제와서 지지도가 좀 낮다고 후보의 다리를 잡아당기고 옷을 찢으며 이렇게 만신창이를 만들어서야 되겠습니까!』
사실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창피스러운 정치문화 수준이다. 당원이 자기정당 후보에 대해 마음속으로 지지를 하지 않는 경우는 설혹 있을 수 있다 치더라도, 경선을 통해 결정한 후보를 헐뜯고 비방하면서 큰 소리로 「바꾸자」고 나서는 행동은 우선 민주적이지 않다. 더구나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일하던 고위간부들이 내부회의에서 있었던 내밀한 부분까지 「폭로」하면서 후보의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히려는 태도는 바로 등뒤에서 총질하는 야만이다. 자기 당 후보의 상처내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남의 당 후보를 당선시키려는 적극적인 「운동」인 셈이다.
문제는 「왜냐」다. 그들은 왜 그의 다리를 잡아다니고 옷을 찢으며 그를 만신창이로 만드는가. 그들은 왜 「바꾸자」고 소리치며 그의 도덕성을 「폭로」하는가. 그들은 누구인가. 목숨걸고 뛰어보지도 않은 채 선거에 진다는 생각부터 하거나, 보따리 싸고 당을 떠나려는 그들은 바로 누구인가. 경선의 결과를 부정할 양이었다면, 그런 경선을 무엇때문에 했다는 것인가. 그리고, 이 모든 전말을 지켜보는 김영삼 대통령의 속 뜻은 정말 무엇인가.
순리대로 생각하면, 한번 정해진 후보를 위해 최선을 다해 힘을 모아보고, 그래도 도저히 안되면 「야당하겠다」는 각오를 하면 그뿐이다. 도중에 인기가 떨어져 희망이 없다는 결론이 났더라도 인기를 회복하려는 필사적인 노력이 먼저여야 한다. 시간이 모자란다고 단념할 시기는 전혀 아니다. 시간은 「아직」있다. 그런데 왜 신한국당은 지금 서둘러 「해체」의 길을 걷는 것인가. 그 길을 가도록 방치하는 것인가. 아니, 돕는 것인가.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할 이전투구 양상을 연출해온 신한국당이 대선을 목전에 둔 시점에서 쪼개지든 헤쳐모이든 국민이 크게 안타까워할 까닭은 없다. 또 그 당의 총재인 이회창 후보가 힘겨운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고 해서 국민에게 책임이 돌아오거나 영향을 주는 일도 있을 것 같지 않다.
다만 『후보를 바꾸는 한이 있더라도 권력을 「저쪽 편」으로 넘겨주지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현재의 상황을 설명해주는 가장 확실한 정답이라면 그때는 문제가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다. 김영삼 대통령이 아직도 마음을 비우지 못하고 있다는 증좌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비우지 못한다는 것은 정정당당하지 못하다는 뜻이 될 수 있다. 당을 줄줄이 이탈하고 신당 주변으로 몰려가는 면면들의 얼굴이 지금 보여주는 것은 「비우지 못한 김심」의 잔상이다.
경선에서의 승리로 지난 36년간에 걸친 영남패권주의를 끝내는데 기여했던 한 아마추어 정치인의 「원칙주의」와 「때묻지 않음」의 실험이 현실의 정치에서 어떻게 귀결될 것인지, 그것은 이번 대선을 조망하는 또다른 시점이기도 하다.<심의실장>심의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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