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까지만해도 불야성을 이루던 미아리·천호동·신길동 등 홍등가에 몰아치고 있는 단속의 찬바람/매매춘과의 전쟁 예고편인가 아니면 일부지역의 일시적 단속인가사창가, 홍등가에 찬바람이 휘몰아치고 있다. 사창가가 생긴 이래 이번 겨울은 아마 가장 추운 계절이 될 것같다고 몸을 파는 여인들은 말한다. 사창가에 대한 갑작스럽고 대대적인 단속. 얼마전까지만 해도 새벽녘까지 붉은 커튼 속에 불야성을 이루던 서울의 미아리 청량리 천호동 신길동 등 대표적 홍등가들이 몰래 영업을 하거나 폐업하는 등 존폐 기로에 서 있다.
역사 이래 최초의 직업이라는 매춘. 사창가에 대한 공권력 발동은 「매춘과의 전쟁」의 신호탄인가? 사창가는, 윤락은 과연 우리 사회에서 사라질 수 있을 것인가? 사창가에 부는 찬 바람은 우리 사회의 매매춘 문제를 다시 드러내 놓고 있다.
사창가에 대한 당국의 단속이 처음 시작된 것은 지난해 9월. 서울 강동경찰서는 천호동 윤락가 10대 소녀 탈출사건을 계기로 이른바 「천호동 텍사스」 고사작전을 시작했다. 연일 150여명의 경찰을 투입, 출입자에 대한 검문검색과 함께 호객 및 영업행위를 단속했다. 성을 사는 매춘을 원천봉쇄함으로써 매춘을 막는다는 생각이었다.
올 9월 검찰이 「신길동 텍사스촌」 단속에 들어 가면서 「사창가와의 전쟁」은 본격화했다. 서울지검 남부지청은 지난 29일 드디어 칼을 뽑고 업주와 윤락녀들의 강력한 반발 속에 무허가업소 45개를 철거했다. 경찰은 지난달 중순부터 단속지역을 미아리와 청량리 일대 윤락가로 확대하고 자진 폐업을 통해 자연스럽게 폐쇄를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서울 광진구청도 불법건축물 형사고발과 단전·단수 등 조치를 통해 화양리 일대 홍등가를 점진적으로 폐쇄해 나가기로 했다.
검찰은 홍등가 단속·철거 이유에 대해 『자녀 안심하고 학교보내기 운동의 일환으로 학교 인접 지역의 유해업소를 정비하는 것이지 본격적인 매춘과의 전쟁은 아니다』며 의미를 축소했다. 하지만 한 관계자는 『다른 지역에 대한 단속과 철거 여부는 여론의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긍정적 여론이 확산될 경우 대대적 단속이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많은 국민들도 사창가에 대한 이번 단속을 예사롭게 보지 않고 있다.
사창가에 대한 당국의 단속은 현재 종합적이고 확고한 대책없이 일시적인 밀어붙이기식으로 진행되는 느낌이다. 그래서 윤락가가 근절되기 보다는 오히려 지하화, 밀실화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실제 서울에서 밀려난 업주와 윤락녀들이 시외곽과 평택 파주 성남 의정부 수원 오산 등의 홍등가로 진출하거나 도심의 변태 유흥업소로 유입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평택과 파주지역은 서울출신 업주와 윤락녀들의 유입이 두드러진다. 평택역 부근 속칭 「쌈리골목」은 올 들어 서울에서 내려온 업주와 윤락녀들로 업소수가 크게 늘어 200개를 넘어섰다. 소위 「벌집」으로 쓸 신축건물들이 곳곳에 들어서고 있어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파주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용주골 윤락업주나 부동산 소개소에 「건물을 구할 수 있는가」 「가도 상관 없는가」 등을 묻는 서울지역 업주들의 문의전화가 부쩍 늘고 있다』고 말했다. 아예 지방으로 빠져나가는 사례도 있다. 퇴락세를 보이던 광주 대인동 윤락가는 최근 서울말씨를 쓰는 여자들이 크게 늘면서 활기를 띠고 있다. 서울 강남일대의 룸살롱이나 단란주점, 안마시술소, 증기탕 등에는 최근 윤락녀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퇴폐의 정도가 심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부작용을 막기 힘든 상황이다 보니 당연히 단속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전면적이고 지속적인 단속이 이뤄지지 않는 한, 매춘을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와 같은 상황이라면 오히려 퇴폐 유사업종들을 기형적으로 번성하게 하고 매매춘의 밀실화, 퇴폐화를 더욱 조장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여성단체들은 이번을 계기로 경찰의 단속지역과 강도를 더욱 확대·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화여대 대학원 「매매춘 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모임」은 『단속범위를 전지역으로 확대하면 부작용은 있을 수 없다』며 『문제는 당국의 확고한 정책과 지속적인 단속 의지』라고 주장했다.
홍등가를 무차별 단속하기 보다는 정부의 규제·관리 강화를 주장하는 견해도 등장하고 있다. 매매춘을 완전 근절하기란 어차피 어려운 것이므로 사창가를 일반 주택가와 격리하고 업주와 윤락녀에 대한 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이 차선이라는 것이다. 아직은 조심스럽지만 공창제 도입을 생각해 보자는 목소리도 있다.
한국여성개발원 변화순 수석연구위원은 현재와 같이 일부 지역에 편중된 일시적 단속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고 단언했다. 변위원은 『이제는 윤락 문제를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내 본격적인 논의를 할 시점이 됐다』며 『매매춘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장기적이고 통일된 정책을 이끌어 내야 한다』고 말했다.<배성규 기자>배성규>
◎인류의 오랜유산 매매춘/고대그리스서적에 매춘부 등장/우리나라는 신라유녀가 효시
매춘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다. 고대 그리스 사서에 매춘부의 존재가 처음 등장했고 매춘을 말하는 영어 prostitution도 이때 비롯됐다. 어원에는 여러 해석이 있지만, 앞을 뜻하는 「pro」와 서있다는 뜻의 「stitution」이 합쳐진 것으로 문 앞에서 남성을 유혹하는 행위를 뜻한다는 풀이가 우세하다. 고대 그리스 로마 사회에서는 매춘부들에게 구분이 되는 옷을 입혔고 세금도 부과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고대 히브리 사회에서는 외국여자에게만 매춘을 인정한다는 법률을 제정하기도 했다.
집단을 이룬 「매음굴」이 등장한 것은 중세 유럽때부터. 이곳은 중요한 세원으로 정부의 보호를 받으며 번성하다 종교개혁으로 철퇴를 맞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시대에 가무를 담당하던 유녀를 효시로 본다. 또 전쟁에서 얻은 노비를 군대 위안부로 삼는 사례도 있었다. 고려시대 때 중국에서 관기제도가 수입되면서 기녀라는 명칭이 붙었고 조선시대에는 기생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본래 기생은 관기와 민기, 약방기생과 상방기생 등을 통칭하는 말. 매춘을 본업으로 한다기 보다는 궁중의 약 제조나 가무를 맡다 사대부나 군인들의 위안부로 역할이 바뀌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조선 후기 들어서는 서울과 평양 등지에 갈보라고 불리는 직업 매춘부들이 소규모 유곽을 이루었다.
매춘에 대한 논쟁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조선 태종때 창기를 모두 없애자는 주장에 대해 일부 관리들이 『창기를 없앤다면 관리들이 여염집 담을 넘게 돼 훌륭한 인재들이 벌을 받게 될 것』이라며 반대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우리 땅에 홍등가가 본격 등장한 것은 구한말 일본군대가 진주한 1904년께부터. 당시 공창제도를 채택하고 있던 일본은 국내에도 이 제도를 이식했다. 공창은 계속 증가해 1930년대에는 전국에 25곳이 설치됐다. 공창제도는 해방과 함께 폐지됐지만 미군이 주둔하면서 「기지촌」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사창가가 등장했다. 사창가를 「텍사스촌」이라고 부르는 것도 기지촌에서 비롯됐다.
내국인을 대상으로 한 현재의 사창가가 나타난 것은 60년대. 61년 윤락행위방지법이 제정되는 등 정부가 사창가의 존재를 인정하기 시작했고 「종3」 「미아리」, 「588」 등의 명칭이 등장했다. 72년 내무부가 전국의 「특정지역」을 전부 폐쇄한다는 방침을 밝혔을 때 파악된 전국 사창가는 무려 104곳이었다. 이 가운데 절반 가량은 아직도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전국의 「특정지역」(홍등가)은 지난해 말 현재 51곳. 경기도가 13곳으로 가장 많고 서울에는 동대문구 전농동 588번지의 속칭 「청량리 588」, 성북구 하월곡동 88번지의 「미아리 텍사스」 등 5곳이 있다. 부산에도 동구 초량2동의 「텍사스촌」과 충무동일대의 속칭 「완월동」 등 4곳이 있다. 충남·북에는 한 곳도 없는 것으로 조사돼 있다. 통계가 밝힌 사창가 매춘부의 수는 5,000여명. 서울의 속칭 「미아리 텍사스」가 800여명으로 가장 많고 부산의 「완월동」이 780여명으로 두번째다.
하지만 이 숫자는 보건증을 갖고 있는 윤락녀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고 유동인구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어서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29일 일부 업소가 철거된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는 100여곳의 업소에 300∼400명의 윤락녀가 있었지만 정부의 통계에는 전혀 반영돼 있지 않았다.<이상연 기자>이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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