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금융권 외면으로 몰락 재촉해태그룹이 좌초의 길로 접어든 직접적 원인은 은행권의 「협조융자」가 제2금융권의 「비협조」로 무력화했다는 점이다.
한보·기아사태이후 금융시장경색에 따른 악성루머와 종금사 여신회수로 8월이후 줄곧 부도위기를 맞았던 해태는 지난달 14일 8개 은행의 1,000억원 협조융자결정으로 정상화가 기대됐었다. 은행들은 이중 547억원을 지난달 중순께 지원했지만 모두 소진돼 해태는 30일부터 어음결제에 실패하고 말았다. 해태는 8월에도 은행에서 1,000억원대의 긴급수혈을 받은 바 있다.
이처럼 해태에 대한 협조융자가 「밑빠진 독의 물붓기」식으로 실패한데는 종금사들의 외면이 가장 결정적이었다. 종금사들은 「여신회수」는 자제했지만 기존여신(어음)을 연장해주면서 추가담보를 집요하게 요구했다.
그러나 부동산과 주식 대부분이 이미 금융권에 담보로 잡혀 있어 추가담보여력이 없자 종금사들은 해태가 보유한 진성어음까지 담보로 잡는 한편 만기연장조건으로 사실상 「꺾기」에 해당하는 예금가입까지 종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흥은행 관계자는 『9월이후 이런 식으로 종금사들이 가져간 돈이 1,2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해태로선 협조융자와 영업수입금으로 회사를 운영할 예정이었으나 부도설로 매출액 자체가 줄어든데다 그나마 받을 어음(진성어음)과 수입금까지 담보 및 꺾기예금으로 종금사에 잡히면서 회사를 돌리기가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위성복 조흥은행 상무는 『현재의 자금회전구조로는 아무리 협조융자를 제공해도 소용이 없으며 미집행융자금인 453억원을 추가로 줘도 이달초면 고갈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제2금융권의 외면이 해태의 몰락을 재촉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근본적 원인제공자는 해태 자신이었다는게 일반적 평가다.
해태도 다른 부실기업처럼 예외없이 사업확장→차입경영→재무구조악화로 이어지는 전형적 좌초패턴을 밟았다. 국내 최고의 식품전업기업이던 해태는 90년대들어 「탈식품」을 선언하며 인켈 나우정밀 등을 인수하는 등 사업다각화를 본격 추진했다. 이같은 확장과정에서 해태는 차입에 의존한 무리한 투자를 감행, 상당한 금융비용부담과 자금압박을 받았다. 해태의 성장이 단기고리자금에 의존한 「제살깎기」식 확장이었음은 종금사여신(1조7,331억원)이 은행여신(1조4,876억원)을 능가하는데서 입증된다. 95년 16.5%이던 자기자본비율은 지난해 13.2%로 떨어졌고 부채비율은 506%에서 658%로 높아지게 됐다.
여기에 83년 부실기업정리정책에 의해 인수한 해태중공업은 누적적자로 작년말 현재 자본잠식규모가 826억원에 달해 그룹부실의 진원지가 됐다.<조철환 기자>조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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