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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문화의 파탄/김광억 서울대 교수·인류학(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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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문화의 파탄/김광억 서울대 교수·인류학(아침을 열며)

입력
1997.10.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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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갑자기 모르는 것이 하도 많아져서 힘이 든다. 우선 정상적인 교육을 받고 국가의 엘리트 경력을 거쳐온 40, 50대 정치인들까지도 왜 과거청산을 외치면서 과거와 똑같은 행태를 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폭력정치에 대항하여 문민과 민주정치를 위해 몸바치겠다고 자임하는 세대의 사람들이 왜 자신의 모습에 대한 최소한의 성찰도 내팽개친 채 연일 악을 쓰면서 진흙탕의 개처럼 뒤엉켜 싸우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떤 수를 써서든지, 법을 어겨서라도 이기면 그만이라는 듯이 목소리를 높이고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막가파식 논리와 행태로 나라를 혼란스럽게 만들면서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않는 자세는 차라리 신기하다.언론조차도 정치의 정도를 파헤치고 국민에게 진실을 알리려는 노력 대신에 저질적인 폭로전을 두고 다만 맞불작전의 추이나, 한 사건이 특정후보에게 미칠 영향을 점치는 수준에만 머물고 있다.

왜 언론들이 각각 특정 대선후보를 찍어놓고 그를 위한 선거의 하수인으로 전락하고 있는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의문은 어디 나 혼자만의 것이랴만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이를 말로 꺼냈다가는 『정치판이 다 그런거 알면서 왜 그래』라는 자조적인 핀잔을 당하거나, 『이런 때는 그저 가만히 있는 것이 상책』이라는 노회한 충고를 받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욱 충격적이고 무서운 것은 어떤 말이든지 즉각적으로 『너는 누구 편이지』하고 단정을 내리는 패거리 논리의 폭력에 희생이 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이성과 진리는 헌신짝이 되고 오직 충성만 요구되는 깡패윤리만이 이 사회에 만연해 있다. 아마도 문제의 본질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이 손바닥만한 나라가 왜 특정인에 대한 맹목적인 감정으로 갈기갈기 찢어져 있는가. 왜 우리는 이를 벗어나지 못하는가.

자탄과 주눅 속에서 사람들은 객관과 공정의 이름으로 자신의 위선을 가린 채 대중매체가 휘두르는 선정적인 스포츠와 스캔들에 탐닉하거나 현실에 대한 약간의 불평을 끄적이다간 『에라 자연으로 돌아가자』하고는 안개 속에 자신을 감추면서 서둘러 논의를 맺는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어떠한 해결책도 추구하지 않은 채 순간순간을 탈출하려는 풍조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문화의 부재에 있다. 정치판에는 정치판에서 지켜야 할 언어와 행동과 일 처리방식의 규범이 있다. 그런데 이 정치문화가 없이 권력싸움만 하는 것이다. 정치인이 준법과 민주적 과정과 점잖음에 대한 신념을 팽개치며, 언론매체가 원칙과 정당함을 생명으로 삼아 정치를 규명하기를 포기하고 있는 마당에서 정치문화가 형성될 리가 없다. 그런데도 우리네 정치가들은 스스로 옛날보다는 많이 나아졌다고 자찬하고 영국의 세련된 정치문화도 수백년의 시행착오를 겪은 것이라고 자기합리화한다. 마치 그 전철을 그대로 밟아야 그만큼 훌륭한 정치문화를 향유하게 된다고 믿는 것 같다. 다만 국민이 비록 겉으로는 자조와 무관심에 빠져있는 듯하지만 그 근본적인 통찰력은 결코 포기하지는 않고 있으리라는 한가지 믿음만이 우리를 완전한 자포자기로부터 구원해주고 있다.

문화부재가 어디 정치분야 뿐이랴. 그리고 정치문화의 부재가 어디 정치인들에게만 책임이 있겠는가. 우리 모두가 자조와 외면, 맹목적인 편가르기에 머물러 있는데서 빚어지는 총체적 문화빈곤의 탓이리라. 며칠전 발표된 「문화비전 2000」보고서는 이제는 삶의 질을 높여야 할 때이고 이를 위해서 문화가 가장 핵심적인 것임을 천명함으로써 세상을 보는 인식의 전환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가장 비문화적인 사람들이 실천의 실질적 힘을 가진 정치의 주역을 맡고 있는 현실에서 어떻게 문화가 제대로 실현되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문화입국은 문화프로그램의 화려한 개발이 아니라 생활자체가 문화적으로 세련됨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정치든 경제든 각 영역이 품위있게 영위되는 사회가 곧 문화사회이다. 언제 우리는 그러한 품격있는 문화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문화의 달인 10월을 보내면서 가장 비문화적인 한 달을 마무리하는 처연한 심경이 바람에 날리는 낙엽이 되어 마음의 창을 휘몰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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