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다시 등장… 국내서도 토종빅밴드 앨범 나와스타는 가라. 색소폰, 트럼펫, 트롬본, 베이스, 드럼, 기타, 피아노 등 보통 10∼20명의 재즈맨이 함께 이뤄내는 스윙 앙상블 「빅밴드(Big Band)」가 있다. 빅밴드 재즈가 멀고도 험한 여행끝에 부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빅밴드 최대의 마력이라면 일사불란한 협주(riff)가 아닐까. 아니, 그보다는 연주 사이사이 몇몇 주자가 일어서서 들려주는 즉흥이 더 재미있지 않은가. 무엇보다 대편성 스윙선율만이 갖는 그 상쾌함이란….
「빅밴드」란 듀크 엘링턴, 베니 굿맨, 카운트 베이시, 아티 쇼, 글렌 밀러 등 1920, 30년대의 걸출한 밴드 리더들에 의해 확립된 재즈 특유의 양식이다. 빅밴드가 졸지에 사라진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된서리 때문이었다. 많은 인원을 데리고 전국을 순회하는 등의 만만찮은 유지비를 전쟁통에 조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40년대 후반, 빅 밴드는 4∼6명 편성의 캄보에게 모든 영광을 물려주고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만다.
그러나 80년대 자본주의 세계의 안정은 빅 밴드를 다시 역사의 전면으로 끌어냈다. 미국 고등학교의 60%, 대학교의 40% 등 모두 2만5,000여 학교 밴드에 약속이나 한 듯 빅밴드 선풍이 들이닥쳤다. 행진 또는 행사 악단의 즐겁고도 효율적인 연습에 빅밴드 음악만한 것이 없다는 현실적 사정이 우선 최대의 이유였다. 실용적 차원에서 붙은 빅밴드의 불은 결국 무대로까지 이어졌다. 쟁쟁한 프로 재즈맨들이 그 꿈을 찾아 나선 것이다. 지금 빅밴드 재즈는 팝이나 록은 물론 심지어는 크리스마스 캐럴까지 관심 두지 않는 분야가 없다.
불길의 정점은 놀랍게도 일본 출신의 여성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아키요시 도시코(68·추길민자)다. 꼭 1년 전인 지난해 10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자신의 15인조 「뉴욕 재즈 오케스트라(NJO)」를 이끌고 50주년 기념 세계 순회연주의 대미를 장식했던 여걸이다. 교양도서의 대명사 이와나미신서(암파신서)는 제467권을 그녀의 자서전 「재즈와 산다」에 할애했다.
빅밴드 선풍은 나라 밖 이야기만은 아니다. 군악대나 행진악대, 또는 팝악단이 심심파적으로 재즈 소품을 연주하던 것이 고작이었던 우리 빅밴드는 이제 최초의 본격 빅밴드 음반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22명의 토종 재즈맨으로 구성된 「정성조 재즈앙상블」이 4월 내놓은 앨범 「올 댓 재즈」가 그것이다(도레미 레코드). 국내에 특히 인기있는 재즈 명곡을 빅밴드 스타일로 편곡했다. 창작 빅밴드곡도 4편 포함됐다.
빅밴드의 부활, 바다 건너 이야기만은 아니다.<장병욱 기자>장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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