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떠받치기식관리 한계 봉착/“시장 스스로 바닥확인케 유도를”금융위기가 공황과 정상회복의 갈림길에 들어섰다. 시장분위기는 비관론이 다소 우세한 편이지만 정부와 금융권의 선택 여하에 따라 「제2의 멕시코사태」를 피할 여지는 아직도 충분하다는게 일반적 지적이다.
29일 외환시장은 개장 32분만에 「사실상」 폐장됐다. 환율은 개장초부터 폭등세를 연출하며 순식간에 하루 변동상한선(기준환율대비 2.25%)인 9백64원에 도달했다. 오로지 「사자」주문만 있고 「팔자」주문은 나오지 않는, 실질적 시장정지상태가 이틀째 계속된 것이다. 수요만 있고 공급이 중단되면서 기업들은 수입결제대금을 마련치 못해 실수요증명서류를 한국은행에 제출하고서야 필요한 달러를 「제한공급」받았다.
증권시장은 미국주가 폭등과 정부의 시장안정대책 기대감으로 종합주가지수 500선을 하루만에 회복했지만 폭락속도에 비해 반등의 힘은 미약했다. 금리도 하락세로 반전됐으나 현 자금시장은 주식·외환시장의 움직임에 종속적일 수 밖에 없어 언제라도 반등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이처럼 브레이크 없이 공황으로 치닫는 금융시장의 흐름을 선회시키려면 어떤 형태로든지 정부의 개입이 불가피하게 됐다. 그러나 종전의 단기부양책이 실패했다는 것은 이미 입증됐다. 높아지는 시장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떠받치기」식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시장 스스로 「바닥」을 확인한 뒤 반등할 수 있도록 정책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환율의 경우 외환당국의 「마지노선」관리는 더 이상 불가능하다. 이틀째 환율이 변동제한폭까지 오른 것은 외환당국의 의지가 아니라 능력의 문제다. 외환보유고가 3백억달러 이하로 떨어진 상황에서 기세등등한 투기적 가수요에 맞대응하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다는 것이 금융계 지적이다.
외환 시장관계자들은 「1달러=1천원돌파」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산술적으로도 변동상한선을 이틀만 더 치면 달러당 1천원에 도달하게 된다. 하지만 한 외환딜러는 『어쩔 수 없이 환율상승을 따라가고 있지만 모두 지금 수준에도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계는 환율상승의 정점을 9백80∼1천24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더 이상 오르면 시장은 완전파괴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외환당국도 이 선까지는 절하를 용인할 가능성이 높다. 한은 고위당국자도 『방치할 수 없는 시점이라면 비상조치를 발동하겠지만 시장이 아무리 혼란을 겪더라도 정부가 직접 나서는 것보다는 시장에 맡기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주가도 추가하락의 여지는 많다. 그러나 일단 바닥이 확인되면 증시참여자 스스로 반등할 잠재력은 있다는 평가다. 한국금융연구원의 송치영 박사는 『증시는 주가가 떨어져도 사자와 팔자가 늘 있기 때문에 균형점 모색이 가능할 것』이라며 『다만 국내 외환시장은 시장참여자들의 수가 적은데다 모두 동일한 기대를 갖고 있어 경우에 따라서는 균형점을 찾지 못하고 무한대로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정부의 개입은 ▲주가보다는 환율에 초점을 두되 ▲직접적 가격관리는 배제하고 ▲시장 스스로 바닥을 확인한뒤 회복할 수 있도록 수요기반확충(증시) 외자도입확대(환시장) 등 「주변여건」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이성철 기자>이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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