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는 첫눈이 내리기 전까지 생명을 지탱한다. 10월에 절정을 이루던 하얀 꽃들은 코끝을 시리게 하는 찬 기운에 지기 시작하지만 늦가을 바람이 만들어내는 그 거대한 출렁임은 여전히 매혹적이다.억새밭에서는 많은 것이 떠오른다.
너른 산을 가득 메운 억새를 마주하고 서있노라면 공연한 외로움이 엄습한다. 가슴까지 올라오는 억새들을 헤치고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면 쳇바퀴 돌듯 되풀이되는 일상이 그렇게 공허해보일 수 없다. 「쉬이익, 쏴아아」하는 소리는 겨울바다의 파도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늘이 청량하면 청량한대로, 비라도 뿌릴듯 낮고 흐릿하면 더욱, 11월의 억새는 오래도록 잊고 지냈던 것들을 기억 저편으로부터 불러낸다. 한국관광공사의 도움말로 11월에 가볼만한 억새군락지 4곳을 소개한다.
■남제주 중산간도로
제주에서 억새를 보려면 드라이브 코스로 이름난 604번 지방도로를 타야 한다. 성산 일출봉과 성읍 민속마을을 잇는 이 길의 또다른 이름은 억새 오름길. 전국에서 가장 볼만한 억새명소로 꼽힌다. 멀리 한라산을 배경삼아 도로 양쪽으로 곳곳에 솟아오른 언덕에서 듬성듬성 무리를 이뤄 흔들리는 억새들이 한번 보기만 해도 지워지지 않을 강한 인상을 남긴다.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장수 장안산 중부능선
장안산 억새는 산등에서 동쪽 능선의 등산로를 따라 펼쳐진다. 바람이 불면 구불구불한 산등을 타고 흔들리는 억새의 모습은 다른 곳에서는 쉽사리 보기 힘든 장관이다. 괴목동으로 올라가 범연동으로 내려오는 15㎞ 코스가 5시간 30분정도 걸리고 산 아래 방화동에는 주차장과 숙박시설을 갖춘 가족휴가촌이 있다. 영동고속도로 옥천 IC에서 무주목삼거리를 지나 19번 도로를 타고 가면 된다.
■정선 민둥산
해발 1,116m의 민둥산은 일명 억새산으로도 불린다. 그만큼 억새가 많다. 산세가 완만해 가족등반에 적합하고 정상에 올라 내려다보는 강원도 특유의 가을풍경이 일품이다. 화암팔경을 비롯해 인근에 이름난 관광지들도 많다. 서울에서 증산까지 기차가 다니며 영동고속도로 하진부 IC에서 405번 지방도로를 타고 나전에서 42번 국도를 거쳐 정산에서 429번 지방도로를 달리는 드라이브 길도 낭만적이다.
■대구 비슬산
영남권에서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억새군락지. 5부 능선까지는 침엽수림, 9부 능선까지는 기암괴석이 펼쳐지지만 정상 부근에는 수만평의 억새밭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정상까지 오르는 산길에 유가사와 도성암이 있고 자연휴양림(053―650―3595)도 갖춰져 쉬어갈 수도 있다. 대구에서 현풍까지 시내버스가 다니고 현풍에서 유가사까지 2시간마다 시외버스가 있다.<김지영 기자>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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