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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죽이기」 이후(장명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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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죽이기」 이후(장명수 칼럼)

입력
1997.10.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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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대통령 선거를 신나게 치를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각 후보들이 제시하는 나라의 미래를 향한 꿈과 비전에 기꺼이 동참하면서 즐겁게 투표할 수는 없는 걸까. 누구를 지지해도 떳떳하고, 누가 당선돼도 기대를 걸 수 있는 축제와 같은 선거가 왜 우리에겐 불가능할까.몇달전만 해도 그런 분위기가 있었다. 지난 7월 여당 사상 최초로 치른 신한국당의 대선후보 경선은 뜻깊은 민주주의의 진전으로 평가됐고, 정권교체를 위해 후보 단일화를 이루겠다는 야당들의 선거전략 역시 설득력이 있었다. 어느쪽이 이기든, 어느쪽에 투표하든 명분이 있다는 밝은 분위기였다.

권력이 만성적으로 부패하고 오만한 것은 헌정사상 한번도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므로 기필코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는 야권의 주장에 많은 사람들이 동감했지만, 「법대로 원칙대로」를 내세운 이회창씨의 이미지는 정권교체론에 능히 맞설만큼 신선했다. 그의 등장 자체가 한국정치의 변화를 예고하는 하나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는 신한국당 경선에서 대의원 60%의 표를 얻어 후보가 됐고, 경선직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50%라는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그가 감사원장과 국무총리로 일하며 「대쪽 이미지」를 남긴 기간은 불과 1년2개월이었지만, 법대로 원칙대로 일하는 대통령을 한번 보고 싶다는 국민의 열망이 「이회창 신드롬」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이회창씨의 인기가 추락하기 시작한 것은 두 아들의 병역의혹에 대해서 그가 정치가처럼 대응하지 못하고 법관처럼 대응했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무조건 사과해야 할 때 그는 적법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신한국당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책임이 없을까. 『그것 봐라, 내가 후보가 안 되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게 아닌가』라는 자세로 팔짱끼고 구경만 했던 사람들은 잘못이 없을까. 경선에 참가했던 기라성같은 인물들이 협조했다면 이회창씨의 「지도력 부족」이 문제가 되었을까.

여당이 대선후보를 경선한 것 자체가 시기상조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 당시 경선이외의 다른 길이 있었던가. 김영삼 대통령은 후보를 지명할 힘을 잃은 상태였고, 여러명의 경선 후보들이 과열 경쟁을 하고 있었으며, 경선을 해야 한다는 시대적인 요구가 팽배해 있었다. 경선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고, 그 의미는 매우 컸다. 정치신인들인 이회창씨와 이인제씨가 오랜 직업 정치인들을 누르고 1, 2위를 차지했을때 언론은 「대의원 혁명」이 일어났다고 흥분했었다.

신한국당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자기당의 「대의원 혁명」을 짓밟는 추악한 싸움으로 무엇을 얻으려는가. 「이회창 죽이기」 이후에 오게 될 도덕적인 혼란, 신뢰의 추락, 규칙도 약속도 휴지 조각처럼 버려지는 그 총체적인 무질서를 어떻게 감당하려는가. 김영삼 대통령은 시중의 추측대로 이회창 죽이기에 가담하여 손에 피를 묻히려는가.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부인하는 부도덕한 싸움에 정말로 뛰어들 생각인가. 이회창 후보가 자신을 향해 먼저 칼을 빼들었다고 변명하기에는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너무나 막중하다.

이회창씨는 정치의 세계를 너무 만만하게 보았다가 수렁에 빠져서 고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가 만일 대선에서 실패한다면 무모한 도전으로 가족에게까지 상처를 입혔다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회창씨 개인의 실패로만 기록될까. 경선으로 선출한 후보를 인기가 떨어졌다는 이유로 뒤흔들어 추락시키고, 다른 후보라도 내세워 권력을 놓지 않으려고 몸부림쳤던 사람들을 역사는 어떻게 기록할까. 내가 대통령이 되는 수단으로서 당이 필요했을 뿐 내가 당을 위해 할 일은 없다고 생각했던 기라성같은 인물들을 국민은 어떻게 기억할까.

수단방법 안 가리고 정권을 잡겠다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수단방법 안 가리고 정권을 안 놓겠다는 것이다. 규칙을 무시하고 판을 갈아 치우겠다는 것은 쿠데타다. 총칼들고 목숨을 내놓고 벌이는 쿠데타는 그나마 순진하다고 볼 수 있다. 자기정권 아래서 5년을 못 견디고 무너지는 여당, 당내 쿠데타로 후보를 바꾸겠다는 여당, 신한국과 신한국당의 말로가 어찌 이리 비참한가.<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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