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적 비유에 대한 집념의 결실조경란의 「불란서 안경원」(「문학동네」 발행)은 신인작가에게서는 만나기 쉽지 않은 세련된 소설기술을 보여준다. 소설집에 실린 열 편의 중단편은 여러가지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것은 하나같이 문학적으로 적정한 표현을 찾으려 고심한 흔적을 갖고 있다. 조경란 소설의 예술적 집념은 줄여 말하면 비유에 대한 집념이다. 어떤 사물, 사건, 정황을 정밀하게 묘사하면서 그것을 최종적으로는 다른 어떤 것의 비유가 되게 하는 것은 그 소설의 허구에 핵심적인 장치라고 말할 수 있다. 예컨대 불란서안경원은 작중 인물이 일하는 장소를 표시하지만 비유적으로는 관망하는 것으로 세상과의 교섭을 대신하고 있는 한 수동적이고 자폐적인 개인의 실존적 정황을 의미한다.
이러한 비유적 발상은 물론 소설의 정통적 기법에 속하는 것이다. 사실, 조경란 소설에서는 소설의 장르적 습관에 대한 신뢰가 소설의 형식적 자유를 확대하려는 의욕보다 우세한 편이다. 특히 고백은 그의 소설이 의거하고 있는 중요한 관습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작품들은 어느 경우에나 한 개인의 은밀한 내면을, 세상에 감춰져 있을뿐만 아니라 발설하기도 어려운 자아의 영역을 문제삼으며 그 내면을 구성하는 심리적 현실을 묘사하는 데에 관심을 집중한다.
한 개인이 내면을 드러낸다는 것은 타인들과 공유하는 사회적, 도덕적 세계로 그의 자아를 노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경란 소설이 기록하고 있는 것은 외로운 개인이 처해 있는 내면의 지옥이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세상에서 격리된 사람들의 광기와 기행에 대한 보고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가족윤리와 개인적 욕구 사이에서 번민하는 젊은 여성의 심리를 통해 가족의 의미가 상실된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내 사랑 클레멘타인」 같은 가작이 말해주듯이, 그 불우한 내면의 기록은 개인의 실존적 조건에 대한 열정적인 물음을 포함하고 있다. 조경란이라는 신예의 출현은 청량한 소식이다.<문학평론가·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동국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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