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의 서슬로 엮은 명징한 언어의 사슬/고통속에서 더욱 빛나는 넉넉한 모성의 품/교사직 접고 시작 몰두하며 쉽고도 아름다운 시어로 삶을 응시하는 자세 그려나희덕(31) 시인이 세번째 시집 「그곳이 멀지 않다」(민음사 발행)를 냈다.
첫 시집 「뿌리에게」(91년), 두번째 시집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94년) 이후 3년만에 묶여져 나온 나씨의 시편은 그의 견고한 서정이 여전히 단단하게 서슬을 세우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서슬은 삶과 세상의 고통을 견디는 시인만의 방식이지만 그의 시를 읽는 독자들에게는 명징한 언어의 사슬이 된다.
「얼어붙은 호수는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다/ 불빛도 산 그림자도 잃어버렸다./ 제 단단함의 서슬만이 빛나고 있을뿐/ 아무것도 아무것도 품지 않는다/ 헛되이 던진 돌멩이들,/ 새떼 대신 메아리만 쩡 쩡 날아오른다// 네 이름을 부르는 일이 그러했다」(「천장호에서」 전문).
「전교조」가 시대의 큰 화두였던 시절의 고교 교사 체험이 짙게 배어 있는 첫 시집, 아이 둘을 둔 어머니로서의 모성본능을 토로했던 두 번째 시집으로 90년대 우리 서정시의 희망으로 떠올랐던 나씨는 이후 『문학에 대한 전면적 도전』을 위해 교사생활을 마감했다. 이번 시집의 시들은 그의 말처럼 『생활인으로서의 자신을 안으로 가라앉혀 응시하고자 하는 자세』를 보여준다.
그의 시어들은 여전히 쉽고도 아름답다. 하지만 새롭게 맞은 생활은 우리 모두의 일상이 그러하듯이 고통스럽다. 「나는 어제보다 얇아졌다/ 바람이 와서 자꾸만 살을 저며 간다/ 누구를 벨 수도 없는 칼날이/ 하루하루 자라고 있다」(「탱자 꽃잎보다도 얇은」중에서). 나씨는 『교사직을 그만두고서야 내가 세상을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의 시에서 위안을 얻는 것은 고통 속에서도 넉넉한 모성의 품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오동나무 한 그루에/ 까치가 이십 마리라니./…/ 빈 가지가 있어야지/ 제 몸에 누구를 앉히는 일/ 저 아닌 무엇으로도 풍성해지는 일」(「품」중에서). 이런 구절은 그가 이전에 노래했던 「네 물줄기 마르는 날까지/ 폭포여, 나를 내리쳐라/ 너의 매를 종일 맞겠다/…// 네 몸은 또 얼마나 아플 것이냐」(「풀포기의 노래」중에서) 하는 그의 이타성이 더욱 넉넉해지고 풍성해졌음을 보여준다. 시인의 언어가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처럼 우리에게 위안으로 다가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아닐까.<하종오 기자>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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