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조원 수질개선 예산불구 ‘단속위주’ 한계/오염원 한곳 모으기·환경기초시설 보급·빗물생활하수 분리·주민 자발참여 유도정부가 『국민에게 맑은 물을 공급하겠다』고 약속한 지는 오래 됐다. 수도권 뿐만 아니라 전국 주요 상수원의 수질개선을 위해 수조원의 예산을 배정했고 배출업체에 대한 단속도 꾸준히 해 오고 있다.
하지만 4대강 가운데 수질이 개선된 곳은 한군데도 없고 그나마 낫다는 한강마저 심각한 오염 위기를 맞고 있다. 수질 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것도 이런 결과 때문이다.
정부의 약속대로 2,000만 수도권 주민들이 수돗물을 마음놓고 마시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환경관련 시민단체들은 『사후 대응 차원의 팔당호 수질관리를 사전 예방 차원의 오염원 관리 체계로 바꾸는 것』을 장기적인 대책으로 들고 있다. 오염이 심해지고 난 뒤에 정화 대책을 세우는 것은 말 그대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것.
오염 예방을 위해서는 다양한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우선 팔당호로 흘러 드는 남·북한강 본류와 지천의 오염원을 파악하고 오염 유발 시설을 옮기거나 한군데로 모으는 것이 필요하다. 또 각종 단속·규제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조사해야 한다. 허가와 단속이 되풀이 되고 있는 오염 유발시설 관리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오염원 파악을 위해서는 기초 조사에 대한 예산지원과 인원 확보가 무엇보다 시급하다. 현재 한강 수계별 오염원 기초조사를 전담하는 연구 인원은 한강수질검사소 직원 12명이 전부. 지난 2월 총리실 산하에 범정부 수질개선기획단이 설치됐지만 오염원 조사 지원보다는 오염배출원 합동단속에 치중하고 있는 실정이다.
팔당호 수질 개선을 위한 단기 대책으로는 주요 지천의 오염원을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방안이 가장 효율적인 것으로 거론된다. 올해 한강수질검사소가 내놓은 「수도권 주요상수원의 오염실태 및 관리방안에 관한 연구」는 『팔당호가 목표수질인 1급수가 되려면 경안천과 복하천, 묵현천 등 5개 주요 지천의 오염물질 부하량을 현재의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오염 부하량 반감을 위해서는 지천 주변에 축산분뇨 처리장 등 환경기초시설을 집중적으로 설치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
생활하수와 위락시설의 오·폐수가 팔당호로 흘러드는 것을 차단하는데는 소형 환경기초시설이 효율적이라는 권고도 귀기울일 만하다. 산재한 오염 유발 시설을 한군데로 모을 때까지는 우선 소형 하수처리장을 곳곳에 세워야 한다는 것. 또 팔당호 주변에는 빗물이 흐르는 수로와 하수도가 합쳐져 있는 곳이 많아 이를 분리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장마철이면 하수와 빗물이 한곳에 모여 환경기초시설의 처리용량을 크게 넘게 되므로 엄청난 양의 오·폐수가 정화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그대로 팔당호에 흘러 드는 게 사실이다.
한강수질검사소 최성헌 연구관은 『철저한 단속이나 체계적인 오염원 관리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정책』이라고 지적한다. 상수원 보호정책 때문에 재산권 행사를 제약받고 있는 팔당호 주변 주민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반대 급부를 제공하고 주민을 환경감시의 주체로 만들어야만 수질 개선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이상연 기자>이상연>
◎팔당호 주민들의 분노/“상수원보전 주민희생 너무 커요”/주택신축 등 재산권 규제 어로행위 일체 금지따라/‘수질개선법’ 반대 거세 적절한 피해보상 필요
『서울 사람들의 맑은 물 마실 권리를 위해 우리는 희생돼도 좋단 말이냐』 『물이 썩어 버리면 상수원 보호구역이고 나발이고 없어지겠지, 물아 제발 하루라도 빨리 썩어라』
상수원 보호를 위한 각종 규제 때문에 기본적인 재산권 행사에서조차 어려움을 겪고 있는 팔당호 주변지역 주민들은 정부와 서울 사람에 대한 원망을 감추지 않는다. 가장 규제가 심한 상수원 보호구역의 민심은 흉흉할 정도이다. 남양주시, 광주군, 양평군 등 4개 시·군 157.3㎢에 달하는 상수원 보호구역 내에 거주하는 주민은 모두 2,928가구 8,861명. 이들은 도시계획법과 수도권정비계획법의 각종 규제에 따라 주택과 축사 등의 신·증축은 물론 일체의 어로행위도 할 수 없다.
「양평군 물문제대책위원회」 권오균 위원장.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기 이전에는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으로 지정됐기 때문에 지금까지 26년째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런 희망이 없으니 젊은이들은 도시로 떠나 버리고 고향을 버리지 못하는 나이 든 사람들만 남아 있습니다. 우리들의 저항은 단순한 집단이기주의가 아닙니다. 살아 남기 위한 몸부림이지요』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규제가 한층 강화된 「수질개선 특별조치법」이 지난 5월 국무회의를 통과한 이후 지역 여론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급기야 팔당호 인근 10개 자치단체장들이 직접 나서 정부에 수질개선특별조치법 제정을 중단하도록 요구하는 결의대회를 열어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주민 300여명이 참석한 이 결의대회에서 단체장들은 『팔당호 주변 주민들에 대한 적절한 피해 보상도 없이 일방적으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주민 생존권을 짓밟는 처사』라고 주장했다.
광주군의 한 관계자. 『상수원 보호라는 취지에 반대하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대단위 하수종말처리장 건설 등 환경기초시설 확충과 같은 근본 대책은 외면한 채 주민의 희생만 일방적으로 강요해서는 수질 보전을 이룰 수 없습니다. 주민의 호응을 받을 수 있는 조치만이 실질적으로 상수원을 보호할 수 있어요. 당국이 땅속에 깔린 오·폐수 비밀 배출관을 어떻게 파악합니까. 오직 실정을 알고 있는 것은 주민뿐이니 그들이 스스로 상수원 보호에 나서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황동일 기자>황동일>
◎팔당 유기농법 운동본부 정상묵 본부장/상수원 살리고 지역농민도 사는 길 ‘유기 농법’/값이 좀 비싸도 유기농산물 사세요 오염의 반은 줄어요
『수도권 소비자들이 값이 좀 비싸더라도 유기농산물을 애용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팔당호를 살리는 길입니다』
「팔당 상수원 유기농업 운동본부」 정상묵(45) 본부장은 유기농법이야말로 땅과 농민을 살리고 물을 지키는 일석삼조의 해결책이라고 말한다. 각종 조사에서 팔당호 오염의 최대 요인으로 나타나고 있는 농업폐수.
농업폐수중에서는 축산농가에서 나오는 가축 분뇨가 가장 큰 문제이지만 일반농가의 농약과 제초제, 비료, 생활 하수도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유기농법의 핵심은 농약과 제초제, 화학 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사람과 가축의 분뇨와 퇴비를 섞은 「자연산 비료」를 사용한다는 것. 팔당호와 상류 주변 농민이 모두 이 농법을 이용한다면 상수원 오염문제의 반은 해결된다는 게 그의 믿음이다.
팔당호의 섬마을 「두물머리」 토박이인 그도 『빨리 물이 썩었으면…』하는 주민들의 심정을 이해한다. 「상수원 보호구역」이라는 인위적인 경계선 안팎의 땅값이 20배까지 차이가 나고 병원이나 유치원, 이발소 등 기초시설도 가질 수 없는 형편이니 이런 볼멘소리도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주민들의 쌓인 불만은 밖으로 터져 나왔다. 저항과 반발이 주된 흐름이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달랐다. 『어쨌든 물은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마음에서 95년 12월 양평군과 광주군, 남양주시 등 3개 시·군 40여 농가가 참여한 「팔당 상수원 유기농업 운동본부」를 만들었다. 아직 회원이 50가구에 불과하지만 꾸준히 움직임이 번져 가고 있다.
같은 운동본부 회원은 아니지만 팔당호 주변 지역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유기농업을 하고 있는 농가가 1,000여가구는 된다. 3년전 서울시와 농협이 2,500여가구의 유기농을 육성할 계획으로 자금지원 등을 해 온 결과이다. 『서울시의 「판로 보장」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주춤한 상태지만 판로만 트이면 크게 달라질 겁니다』 그는 유기농업과 인연이 깊다. 71년 한국 최초로 설립된 전국 유기농 단체 「정농회」 회원으로 20여년간 꾸준히 유기농업을 해 왔다. 1만여평의 논밭을 가꾸고 있는 그는 논에 청둥오리를 집어 넣어 잡초 생장을 억제하고 벼의 저항력을 키우는 오리농법 등을 다양하게 시도하고 있다.
각종 야채와 약초를 발효시켜 차나 음료수로 마실 수 있는 야채효소를 「대지향」이라는 상표로 만들어 팔고 「두물머리 농장 딸기잼」도 내놓고 있다. 『농민이 농산물을 직접 가공해야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지요. 독일은 농수산물 가공업에 기업이 참여할 수 없도록 금지해 농가를 살리고 있습니다』<황영식 기자>황영식>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