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과 몸짓연기까지 관객 사로잡아당당하고 거침없는 아름다움. 소프라노 서혜연씨의 노래를 듣는 순간 머릿 속이 시원스레 뚫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21일 예술의전당 재외 유명연주자 초청 시리즈로 열린 그의 독창회는 우리 앞에 새로운 기대주가 등장했음을 깨닫게 했다. 귀에 착 감기는 가볍고 매끈한 소리가 아니라 묵직하고 강렬하면서 꾸밈새가 없어 얼핏 거칠게 들릴만큼 솔직하고 자신에 찬 목소리였다. 음악을 너무 일률적으로 깎고 다듬어서 개성을 찾기 힘든 요즘으로서는 보기 드문, 그래서 더욱 반가운 것이었다.
그는 이날 베르디, 푸치니, 마스카니, 폰키엘리, 카탈라니, 드보르자크의 오페라아리아 8곡과 앙코르 3곡을 불렀다. 첫 곡 베르디의 「1차 십자군의 롬바르디아인」 중 「꿈은 아니었다」에서부터 심상찮았다. 오케스트라를 뚫고나오는 성량부터가 국내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것이었다. 큰 물줄기가 콸콸 쏟아져내리듯 힘차면서도 자잘한 흐름도 살필 줄 아는 유연함으로 곡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낮은 음이든 높은 음이든 흔들림 없는 탄탄함이 믿음직스러웠고 특히 단숨에 뛰어올라 천정을 때리는 강렬한 고음은 대단히 인상적이어서 쉽게 잊기 힘들 것 같다. 단호하리만치 뚜렷하게 곡의 표정을 꼼꼼하게 살려내는 성실함 또한 그에 대한 신뢰를 갖게 했다.
그는 실제 오페라무대에 선 듯 노래마다 표정과 연기를 달리하여 열창했다. 간절한 눈빛과 작지만 열렬한 몸짓으로 청중을 붙잡았다. 그의 노래에 처음 귀가 놀랐고 다음 눈이 매혹당했으며 마지막으로 가슴이 더워졌다. 찌르듯 강렬하고 힘찬 고음에서는 등이 찌르르 한 전율이 느껴졌다. 아버지와 연인을 동시에 잃은 여인의 비통한 아리아 「흘러라 눈물이여」(마스네 「르시드」)를 들을 때는 자연스레 눈물이 어렸다. 마농의 아리아 「나 홀로 버려져」(푸치니 「마농 레스코」)에서 마농이 「아―」하고 탄식할 때도 전율이 일었다.
서혜연씨는 이탈리아와 유럽에서 활동해 국내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얼굴이다. 유명 연주자가 무성의한 연주로 실망시키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낯선 신인이 뜻밖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경우가 있다. 서혜연독창회는 후자에 속한다.<오미환 기자>오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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