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때문에 담배사기 힘들대요”/정지선만 보면 이경규 생각/교통사고 사망 줄어 보람/‘연예인 아닌 언론인’ 평에 웃겨야하는 부담 커져개그맨 이경규(37)씨가 29일 서울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에서 열리는 청소년보호 자원봉사자대회에서 서울지검장 표창장을 받는다. 8월24일부터 MBC TV 쇼·오락 프로그램 「일요일 일요일밤에」시간에 방영되는 「이경규가 간다―청소년 시리즈」를 통해 청소년보호법의 취지를 널리 알리는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담당 연출가 김영희(38)씨와 함께 검찰표창을 받게 될 이씨는 지난 8일에는 청소년보호위원회로부터 감사패를 받았고 23일엔 아시아방송연맹(ABU)으로부터 TV 연예 오락부문 특별상을 받았다. 또 지난달 10일에는 횡단보도앞 차량정지선을 준수하는 차량을 찾는 「이경규가 간다―숨은 양심을 찾아서」(방영 96년 11월∼97년 7월)로 건설교통부장관 특별상을 수상하는 등 상복이 터졌다. 시민단체의 캠페인이나 경찰의 단속보다 훨씬 더 효과적으로 교통문화 정착과 청소년 보호에 이바지해 온 그를 만났다.<편집자 주>편집자>
□대담=김관명 문화부 기자
―큰 상을 연거푸 수상하게 된 것을 축하합니다. 개그맨으로서 소감이 남다를 텐데요.
『학교 다닐 땐 개근상밖에 받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굵직굵직한 상을 다섯번이나 받게 되니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좋습니다. 2월13일 서울시장으로부터 첫 감사패를 받을 때는 방송사 내부에서뿐만 아니라 외부에서도 인정받은 것 같아 제작팀 모두가 기뻐했습니다. 농담입니다만, 앞으로 「이경규가 간다―환경 시리즈」편과 「국방시리즈」편도 만들어 환경부장관상, 국방부장관상에도 도전하면 안될까요』
―지난해 11월 「숨은 양심을 찾아라」시리즈 첫 방영 때 누구도 외면하던 횡단보도 앞 정지선을 뇌성마비 부부가 정확히 지켜 멈춰서던 장면은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이 시리즈는 어떻게 해서 시작됐습니까.
『시리즈 아이디어는 처음 김영희 PD가 내놓은 겁니다. 지난해 「일요일 일요일밤에」에서 유명인사를 예고없이 찾아가는 코너가 있었는데 김PD가 촬영 후 새벽에 차를 몰고 퇴근하다 횡단보도앞 정지선에 우연히 멈춰섰다고 하더군요. 그때 갑자기 「이렇게 아무도 없는 차도 한복판 정지선에 남들도 과연 멈춰 설까」하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다음날 제작팀은 아이디어 회의를 가졌고 곧바로 여의도에서 촬영에 들어갔습니다. 밤새 몰래 카메라를 들이대고 정지선을 지키는 「숨은 양심」을 기다렸지만 허사였습니다. 그러다 새벽 3시께 티코 한 대가 정확히 정지선 앞에 섰고 우리는 너무 기뻐 그 곳으로 달려갔지요. 그런데 그 「숨은 양심」이 말을 제대로 못하는 뇌성마비 부부인 것을 알고는 모두가 목이 메었습니다』
―지금 방영되고 있는 「청소년 시리즈」편은 무슨 내용인가요.
『한마디로 양심적인 가게 주인을 찾는 프로입니다. 청소년보호법상 만 18세 미만 청소년은 카페나 술집 출입이 금지되고 담배도 살 수 없습니다. 또 서점에서는 청소년유해도서를 팔면 안됩니다. 이 모든 규정이 가게주인의 양심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현실은 어디 그렇습니까. 신분증 검사는 차치하고 나이라도 물어보는 경우가 있나요? 이 점에 착안해 시리즈를 새로 시작한 겁니다. 어려 보이는 대학생들로 하여금 술집에 가 술을 시키게 하고 과연 어느 가게에서 이들의 신분증을 확인하는지 몰래카메라로 찍는 거죠. 현재 서울에서만 모두 8곳의 「양심가게」가 탄생했습니다. 여기에는 「양심가게」라는 간판과 함께 「양심이 썩지 말라」는 의미로 냉장고를 선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양심가게」에 인근 불량청소년들이 찾아와 담배나 술을 주지 않는 가게주인에게 협박과 폭언을 일삼는다고 하는데요.
『네. 알고 있습니다. 중랑구에 있는 슈퍼마켓인데 3주일전 동네 청소년들이 밤늦은 시간에 찾아와 술과 담배를 달라고 해 가게주인 아저씨가 호통을 쳐 그냥 보냈었나봐요. 그러자 다시 여러 명이 몰려와 행패를 부렸고 결국 파출소에서 나와 아이들을 연행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뉴스를 통해 알게 된 우리 팀이 직접 그 가게를 찾아가 「양심가게」간판을 달아줬고, 얼마뒤 연행된 아이들 중 한 아이가 입건이 됐나봐요. 그러자 다시 아이들이 찾아와 주인아저씨에게 협박과 폭언을 했다는 것입니다. 저도 전화를 걸어 「상황이 힘들더라도 언론과 경찰이 지켜줄 것이니까 용기를 잃지 말라」고 했죠. 이 가게를 제외한 다른 「양심가게」들은 동네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니까 그래도 안심이 됩니다』
―캠페인성 프로그램때문에 개인적 이미지가 손해를 입는 일은 없나요.
『솔직히 부담스럽습니다. 예전엔 「참 재미있게 봤습니다」라는 말을 들었는데 요새는 「훌륭하십니다」라는 말을 듣습니다. 인터뷰도 스포츠지나 연예잡지가 아닌 시사잡지에서 요청이 옵니다. 주위에선 이런 저를 보고 「엔터테이너」(연예인)가 아니라 「저널리스트」라고까지 합니다』
―프로그램 방영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요. 또 일련의 시리즈가 교통문화 정착과 청소년 보호에 얼마나 이바지했다고 생각합니까.
『팬사인회에 가면 고등학생들이 그럽니다. 아저씨때문에 담배사기 힘들어졌다고요. 또 횡단보도앞 정지선만 보면 「이경규」하는 생각과 함께 자신도 모르게 브레이크 페달을 밟는다는 얘기들을 많이 합니다. 실제로 손해보험협회에서는 이 프로그램이 나간 후 교통사고 사망자수가 현격히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저도 정지선만 보면 아무리 바빠도 무조건 섭니다. 솔직히 우리나라 교통흐름이나 여건상 정지선을 100% 지키기가 어디 그렇게 쉽습니까. 70∼80%만 지켜도 만점을 줘야 합니다』
◎이경규의 좌절과 성공/89년 주병진 콤비 시작/몰래카메라 인기 열풍/영화 ‘복수혈전’ 실패딛고 ‘이경규가 간다’ 재기 성공
이경규씨의 어릴 적 꿈은 지금은 고인이 된 추송웅씨와 같은 연극배우였다. 그래서 대학도 동국대 연극영화과를 택했다. 그의 꿈은 어이없는 이유로 산산히 깨져버렸다. 무대 연기자로서는 치명적 결격사유인 「억센 경상도 사투리」때문이었다.
그는 길을 바꿔 81년 MBC 개그콘테스트를 통해 개그맨으로 데뷔했다. 그러나 남들에 뒤처지기만 했다. 『누구처럼 얼굴만 봐도 웃음이 터져 나올 만큼 코믹하게 생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성대묘사 같은 장기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코믹한 연기라곤 단지 큰 눈을 눈깔사탕만하게 뜨고 눈동자를 상하좌우로 떼굴떼굴 굴리는 재주 밖에 없었죠.』
마침내 그에게도 행운의 여신이 찾아왔다. 89년 당시 개그맨 주병진이 진행하던 MBC 「일요일 일요일밤에」의 개그토크쇼인 「일요진단」코너에 대타로 출연, 예상밖으로 히트한 것. 지금도 『이 코너야말로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장본인』이라고 할 정도로 이 코너의 인기는 대단했다.
하지만 이씨를 본격적으로 「저명인사」로 신분상승을 시킨 것은 바로 91년 6월부터 1년3개월여 동안 방영된 「일요일…」의 「몰래카메라」다. 연예인의 사생활을 몰래카메라로 촬영, 엄청난 반응을 얻었고 이후 방송사내에선 「아이디어 뱅크」로, 외부에선 「한국 최고의 개그맨」으로 대접받게 됐다.
새옹지마일까. 시련은 또 찾아왔다. 92년 기획·제작·연출·주연·배급 등 1인5역을 한 액션영화 「복수혈전」이 기대와는 달리 흥행에 참패한 것. 무료로 출연해 준 동료연예인들의 정성에도 불구, 제작비 4억여원만 날렸다. 『그땐 참 힘들었습니다. 「멋 모르고 날 뛰면 망한다」는 교훈을 얻었죠. 그래도 부산과 광주 등 일부 지역 개봉관에서 영화가 끝나자 박수까지 쳐주신 관객들에게는 지금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결국 일어섰다. 「이경규가 간다」시리즈를 통해 현재 최상의 대접을 받고 있고, 4월부터 시작한 「압구정 김밥」체인점 사업도 잘 되고 있다.
□약력
▲60년 부산 출생 ▲부산 초량초―성지중―동성고 졸업 ▲79년 동국대 연극영화과 입학 ▲81년 MBC 개그콘테스트 은상 ▲89년 MBC 「일요일 일요일밤에」의 「일요진단」코너로 주목 ▲92년 액션영화 「복수혈전」기획 제작 연출 주연 배급 등 1인5역 ▲92년 12월 대학후배인 강경희(32)씨와 결혼, 현재 1녀 ▲95년 8월 수필집 「이경규의 청춘고백―몰래카메라를 사랑했던 국민여러분」발간 ▲95년 12월 MBC 코미디 대상 수상 ▲출연프로=「이경규의 코미디 동서남북」 「일요일 일요일밤에」 「특종! TV연예」 「고정관념을 깨자」 「지금은 특집방송중」 「오늘은 좋은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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