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져줄 수 없습니까』취재관계로 일본 사람을 만날 때면 많이 듣는 말이다. 11월1일 서울에서 열리는 월드컵 축구예선 한일전에서 벼랑끝에 서 있는 일본에게 승리를 양보해달라는 얘기다. 「축구강국」 출신의 기자를 추켜세워주는 배려성 농담이라고 할 수 있다. 취재원 뿐만이 아니다. 심지어 술집에서 방금 통성명한 점잖은 신사도 같은 부탁을 한다.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기타노 다케시(북야무) 감독이 최근 부산국제영화제 기자회견중 『제발 져달라』고 「요구」하는 장면이 일본 TV에 방송돼 일본인들이 배꼽을 잡은 적도 있다. 이쯤되면 이들의 져달라는 부탁은 단지 농담이나 유머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실 일본 축구가 현재 처한 상황은 매우 급박하다. 수년간 급격히 발전한 일본축구는 이번 프랑스 월드컵 예선전에 모든 것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목표는 우선 「콧대높은」 한국을 꺾어 시대가 바뀌었음을 천명하고, 「비원」의 월드컵에 직행함으로써 월드컵 주최국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는 것이었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국내 축구붐을 일으켜 일본축구의 백년대계를 더욱 튼튼히 한다는 것이 당초의 포부였다. 그런데 현재까지의 중간결과는 「숙적」 한국에게 패했을 뿐만 아니라 졸전을 거듭해 월드컵 본선 진출이 어려운 상태이다.
이처럼 다급해진 일본 축구를 지켜보며 2002년 월드컵의 공동 주최국 국민으로서 약간의 동정심을 갖는 것은 인지상정이라고 할 수 있다. 공동 주최국인 한국과 일본이 나란히 프랑스에 진출하는 것이 여러가지 측면에서 보기가 좋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스포츠 세계에서 승부를 타협하는 것은 신성한 스포츠 정신을 모독하는 일이다. 그래서 일본사람들의 「부탁」에 처음에는 웃기만 하다가 최근에는 이렇게 동문서답을 한다. 『지난번 도쿄(동경) 한일전에서는 일본 응원단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서울에서는 한국이 응원단 대결에서도 승리할 것입니다』<도쿄>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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