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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이게 뭡니까(동창을 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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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10.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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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정치판을 바라보면 한숨보다 노여움이 앞섭니다. 여당도 없고 야당도 없는 세상이 바람직한 세상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그렇지가 않습니다. 여야가 있기는 한데, 여당이 야당같고 야당이 여당같아 모든게 뒤죽박죽, 뭐가 뭔지 전혀 알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15대 대통령선거를 50일 정도 앞에 둔 이 나라의 정계는 혼란과 무질서, 중상과 모략, 비방과 욕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미안한 말씀이지만, 이건 정치판이 아니라 「개판」입니다. 오죽하면 여당의 대통령후보로 뽑힌 사람측에서 대통령을 향해 제발 당을 떠나 달라고 악을 쓰겠습니까.국민의 수준이 요 정도 밖에 안돼서 정치가 요 모양 요 꼴이라고 하시면 저도 할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한국의 경우는 좀 다르다고들 합니다. 대한민국의 경우에는 정치의 수준이 국민의 수준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정치가 국민보다 한참 뒤떨어져 있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매우 불행한 이야기입니다.

전국민의 엄청난 기대 속에 찬란하게 출범한 문민정부가 오늘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까. 경제는 바닥을 깁니다. 사회는 지극히 혼란합니다. 정치는 뒤죽박죽입니다. 국제적으로도 위신이 땅에 떨어졌습니다. 군사독재와 부정·부패의 책임을 지고 두 전직대통령이 교도소에 수감되어 복역중인데, 오늘의 한국이 그때만도 못하다고 하면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대통령이 될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비방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뜻이 있는 사람들이 좀 도와드리고 싶어도 이제는 도와드릴 수도 없는 형편에 이르렀습니다.

임기를 채우고 청와대를 떠나게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을 다행으로 여겨서야 되겠습니까. 농담이긴 하겠지만, 14대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은 큰 돈을 들여 역사적 유물이던 구조선총독부건물―한때 중앙청으로도 쓰였던 그 역사적 건물-을 완전히 때려부숴 흔적도 없게 한 일이라고 합니다. 입에 담아 옮기고 싶지도 않은 악평입니다.

아시아의 네마리 용들 중에도 으뜸이었던 이 나라를 오늘의 이 처량한 처지로 몰아넣은 책임은 일차적으로 여당에 있고 그리고 여당의 총수인 대통령 자신에게 있습니다. 3당통합으로 집권이 가능했고, 집권과정에서 가장 크게 공을 세운 민정계를 천대하고 민주계를 편애했으며, 구공화계의 대표인 김종필씨를 당에서 아예 몰아낸 오만과 불손에 그 원인이 있다고 풀이가 됩니다. 개혁과 사정이 공평무사하게 단행되지 못했으며 「표적수사」라는 비판도 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매우 치명적이었던 것은 김현철씨를 비롯한 권력주변 사람들의 엄청난 부정부패였습니다.

여당이 15대 대통령후보 경선을 민주적으로 한다는 미명하에 열명 가까운 「용」들을 청와대 주변에서 날뛰게 한 것은 큰 잘못이었다고 여겨집니다. 그 진정한 동기가 무엇입니까. 대통령께서 후계자로 삼고 싶은 인물을 위장하여 경선에 투입하고 원하지 않은 인물을 나무 꼭대기에 올려놓고 흔들어 떨어뜨리려는 심산이었다며 오늘 이회창후보측에서 격분하고 있는데 전혀 사실무근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처음부터 젊은 이모후보를 민주계 인사들이 똘똘 뭉쳐 밀게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이인제 후보를 두번이나 청와대에 불러 점심을 먹으면서 타일렀으나 듣지 않더라는 말씀도 이제는 곧이 듣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회창 후보가 처음부터 마땅치 않으면 당의 대표직, 총재직을 왜 그에게 넘겨주었습니까. 싫지만 그를 우대할 수 밖에 없는 무슨 약점이라도 대통령께 있었기 때문입니까. 그것이 좀 알고 싶습니다. 이회창 후보의 상식을 벗어난 강한 반발에도 무슨 근거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야당의 후보를 맨먼저 청와대에서 만나야 하는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까. 대통령께서는 아직 탈당하지 않았으니까 신한국당 당원이고 명예총재이십니다. 팔이 안으로 굽어야 자연스럽다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대통령후보 다섯사람을 개별적으로 한사람씩 만나야 할 까닭이 무엇입니까.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가 청와대에서 1시간20분의 회담을 마치고 나오면서 활짝 웃은 사실에 이회창 후보측이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는건 당연하지 않습니까.

각하, 이게 뭡니까.<김동길 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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