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는 내년 1월1일부터 새 루블화가 등장한다. 화폐개혁에 따라 최고 50만 루블에 이르는 고액권이 사라지고 1루블에서 500루블짜리 새 지폐와 코페이카(1루블=100코페이카) 동전이 사용된다.새 화폐의 통용을 두어달 앞두고 러시아인들은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다. 갖고있는 루블을 지금 달러로 바꿔야할지 나중에 새 루블로 바꾸는 게 좋을지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이다. 대체적으로는 「그래도 달러가 낫다」는 분위기다.
특이한 것은 50만루블(85달러)짜리 고액권을 놓고 나타난 「사모으기 현상」이다. 발행된지 1년 남짓한 50만 루블짜리 돈에는 바다를 낀 고성에 돗단배가 다가가는 풍경화가 그려져 있는데 주간지 노바야 가제타지가 한달쯤 전에 이 그림의 잘못을 지적하고 나섰다.
지폐 뒷면에 새겨진 고성은 1428년 백해연안에 세워진 솔로베츠키 수도원이다. 이 수도원은 20세기 인류 최초의 강제수용소였으며 알렉산데르 솔제니친이 쓴 「수용소군도」의 모델이 된 곳으로 유명하다.
솔로베츠키 수도원이 50만루블짜리 지폐에 등장한 계기는 분명치 않다. 아마도 러시아 정교회의 영향력이 날로 커지는 것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솔로베츠키 수도원도 크게 달라졌다. 지금도 강제 수용소 시절의 고문실은 남아 있지만 70년대의 본격적인 복원작업으로 겉으로는 옛모습을 되찾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50만루블짜리 지폐에는 수도원 특유의 양파형태 지붕이나 십자가도 사라져버린, 솔제니친의 책에서나 나올 30년대 강제수용소가 버젓이 살아있는 것이다.
이 잘못 그려진(?) 돈에 대한 일부 계층의 사재기는 서방 세계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곧 자취를 감출 문제의 50만 루블짜리 돈을 수집하려는 움직임이 러시아에도 일고 있으니 러시아사회의 변화 속도는 어지러울 정도다.<모스크바>모스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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