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병의 근원’ 마음을 다스려야 장수/“바깥환경 다스려 발병 피하고 분노와 비애를 삼가며 미움·사랑·즐거움 지나치지 않게”/생활이 종교,종교가 생활인 그들의 삶이 곧 건강비결라사에서 1주일 머문 후 자동차로 나구, 르커치, 산난 등 이른바 장수촌을 찾았다. 이런 곳에 가보면 생활수준이 낮고 위생상태도 좋지 않다. 소화제는 물론 우리나라에서 30년 전 사용했던 다이아진과 각종 항생제가 처방약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었다. 이 곳 사람들의 대접도 몽골못지 않게 융숭했다. 고장마다 음식이 독특했다. 그러나 대부분 밥을 먹지 않았다.
빵은 물론 야채와 과일도 없었다. 고산지대의 경우 야크고기를 주식으로 하며 4,000m이하의 낮은 고장에서는 양고기를 먹고 짬바와 버터차를 마신다.
▷마니창아와 마니콜로◁
짬바란 해발 4,000m이상의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보리를 볶아 빻은 가루에 젖으로 만든 버터를 넣고 손으로 반죽해서 만든 음식이다.
사람들은 햇볕에 타기 쉬운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야크젖으로 만든 버터를 윤기나게 바른다. 그렇다고 피부병이 많은 것도 아니다. 아프리카 오지나 티베트같은 고장 사람들은 목욕을 하지 않고 살아간다.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비누로 피부를 너무 닦다보면 손상을 주어 피부병이 잘 생긴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전문가들에 의해 밝혀진 사실이다.
여러 곳을 가보았다. 생활수준도 낮고 먹는 음식도 균형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인생관은 우리와 많이 달랐다. 악착스럽지도 않고 부자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미워하거나 부러워하지도 않았다. 이들에게 이승이란 잠깐 머물다가는 과정으로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승려가 유난히 많았다. 한때는 전인구의 4분의 1이 라마승이었다.
아직도 라사의 번화한 거리는 물론 시골 도처에서 승복을 입은 라마승을 볼 수 있다. 크고 작은 절에서는 그림이나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온 몸을 땅에 던져 부처님께 절하는 오체투지하는 사람을 수없이 보게 된다. 걸어다닐 때도 누구나 마니콜로(마니활라)와 마니창아(마니상아)를 돌린다. 마니콜로는 원통모양으로 생겼는데 한쪽을 접시 돌리듯 돌리도록 돼있다. 마니창아는 우리나라의 염주와 흡사하다.
라마사원에 들어가면 입구에 사납게 생긴 신장들이 우리나라 절 앞처럼 버티고 있지만 경내에는 마니징런(마니경륜)이 있다. 이런 것은 티베트뿐만 아니라 칭하이(청해)성과 신장(신강)자치구, 그리고 몽골에도 있다. 세상만사는 모두 부처님 뜻으로 살아간다는 얘기였다. 생활이 종교이고 종교가 생활이라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나 도둑이 없고 범죄가 적으며 사람들이 오래 산다는 설명이었다.
▷먼바차추앙과 탱카◁
티베트의 전통의학 또한 인도의 고대 불의설을 받아들이고 있다. 생로병사의 사대고를 비롯한 모든 괴로움 중 병고를 다스리는데 힘써야 하고, 이런 병들은 지·수·화·풍의 네가지 원소가 조화를 이루지 못해 생겨난다는 이른바 사대부조병리설을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런 불의설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있다.
여러 의서에 나오는 약재 뿐아니라 서역과 관계가 있어 보이는 치료법도 있다. 「의방유취」를 보면 풍선창에 걸렸을 경우 선곡박하를 넣은 물로 목욕하고, 악질편신창에는 부련을 쩌서 그 물로 목욕하면 좋다고 나온다. 중앙아시아에서 약을 넣고 목욕하는 약욕법이나 온천요법과 비슷하다.
약욕에 쓰이는 약재를 알아보니 자백, 마황, 소백호, 동청, 하백 같은 것으로 몽골이나 중앙아시아와 비슷했지만 꼭 같지는 않았다. 이 고장 의사들의 설명에 따르면 신경통, 관절염, 소화불량 같은 병에 잘 듣는다고 했다.
전통요법이나 전통의학은 오늘날 라마불교사원과 공식적인 장의학원에서 교육하고 있다. 아직도 의사를 많이 양성하는 절을 특별히 먼바차추앙(문파찰창)이라고 부른다. 51년까지 라사에서 가장 큰 의학교육기관은 먼바차추앙의 하나인 야오왕산(약왕산)이었다. 이제는 장의학원으로 통합됐지만 아직도 지방에서는 큰 절에서 의사를 양성하고 있다.
이 고장에서도 대대로 비방을 물려받고 절에서 장의학을 전수받은 나이 많은 노장의라고 부르는 의사를 가장 존경한다. 그만큼 티베트의 전통의학에는 신비한 일면이 남아있다. 티베트는 넓다. 북쪽으로 가면 고산지대로 반사막에 가깝지만 인도와 접경한 남쪽은 원시림에 가까운 초목이 울창한 곳도 있다. 라사에서 북쪽으로 5∼6시간쯤 차로 달리면 풀이 거의 자라지 않는 반사막지대가 나온다. 이런 곳에도 티베트 특유의 진귀한 약재들이 많다. 절에서 교육받는 의학전공 승려들은 봄, 가을에 여기에서 약초를 수집했다고 한다.
먼바차추앙은 의학교육만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도 진료하기 때문에 한여름이면 병을 고치기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붐비고 사원주변에는 천막촌이 형성될 정도이다. 이들이 기본 의서로 쓰고 있는 책은 몽골과 마찬가지로 의경팔지와 사부의전이다.
의경팔지는 인도의 야유·베다의학을 도입한 불교경전의 하나로, 약보다는 히포크라테스가 주장한 자연치유력에 따른 양생법이 주된 내용이다. 이에 반해 사부의전은 티베트에서 만들어낸 고유의 전통의학경전이라 할 수 있다. 의경팔지는 8세기경 티베트의 유명한 정치가이면서 의학자인 쑹짠간부(송찬간포)에 의해 쓰여졌다. 이론적으로 보아 약보다는 음식이나 정신안정을 통한 자연치유력으로 치료하는 것이 기본적인 특색이다.
티베트에 가보면 확실히 우리나라 풍속과 비슷한 게 많다. 절에 가면 우리나라의 탱화(정화)와 같은 전생과 이승, 저승을 그려놓은 그림을 흔히 볼 수 있다. 티베트인들은 「탱카(만당)」라 부르고 몽골인들은 「탕카」라 한다. 아직도 티베트에서는 비단천에 수를 놓아 의학이론과 각종 치료법을 표시한 이런 탱카로 의학교육을 하고 있다. 사부의전도 탱카로 만들어져 있어 벽에 걸어 놓고 교육한다.
티베트정부가 2년 전 탱카의 종류·내용과 관련해 펴낸 문집을 구해가지고 돌아왔다. 티베트어, 중국어, 영어로 설명이 붙어있다. 탱화와 유사한 탱카라는 말을 보더라도 우리나라와 티베트는 과거에 약재는 물론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교류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마음을 다스리는 양성조신법◁
실제로 동의보감에 기록된 약재 중 21종은 중앙아시아 내지 티베트산으로 추정된다. 또한 「고려사」를 보면 서역에서 상인들이 세 번에 걸쳐 우리나라를 찾아와 조정에 예물을 바쳤다. 그중 몰약이나 대소목같은 것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소개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티베트의 문물과 의학은 파미르나 타클라마칸고원을 지나 몽골로 전파되고, 원나라때부터 혜초 스님같은 승려를 통해 우리나라까지 전파되었으리라 여겨진다.
우리처럼 티베트인들도 여러가지 병에 사혈요법을 사용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이들의 양생법 중 정신건강에 관련된 부분이다. 물론 전설로 전해지는 바와 같이 문성공주를 통해 들어온 중국 한의학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오늘날까지 꾸준히 이어지는 소박하면서도 종교적인 생활이 이들을 장수하게 만드는 비결로 여겨졌다. 의식주 어느 한가지도 제대로 갖추어진 것이 없지만 장수하는 사람이 많았다.
라사에 있는 자치정부 장의원의 주임의사는 마음을 다스리는 양성조신법을 세가지로 설명해 주었다. 우선 바깥환경을 다스려 병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한다는 의미에서 청이목 이피우환을 강조했다. 공자도 예가 아니면 보지말고 듣지도 말라고 했다. 노자도 다섯가지 색과 다섯가지 소리가 사람을 눈멀게 하고 귀머거리로 만든다고 했다.
두 번째는 지나친 분노나 비애를 피한다는 원칙이었다. 분노칙손수하고 비애칙상혼이라는 말이다. 화를 내면 수명을 단축하고 너무 슬퍼하면 정신건강에 나쁘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미움이나 사랑, 즐거움도 지나치면 건강에 나쁘다는 것이다. 즉 증애손성상신하고 희락과칙상혼한다는 말이다.
얼마나 많은 현대인이 이런 원칙과 어긋난 생활을 하는지 되새겨봤다. 실제로 오늘날 우리들이 앓는 대부분의 병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심신병이다. 우리 모두 마음의 건강을 되찾는데 힘써야겠다.<허정 박사>허정>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