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만에 선 보은 표석/54∼58년 폐허속 26만여명 돌봐/서대신동 1가 옛 부산여고 자리/당시 치료받은 이들 모여 뜻모아 “마음의 빚 조금 갚았지요”『휴전직후 폐허에 한 가닥 인술의 빛을 비추었던 「서독병원」을 기억하십니까』
한국전쟁을 겪은 부산사람과 피란민에게 향수처럼 남아있는 서독병원 자리에 40년만에 「보은의 표석」이 세워졌다.
24일 상오 11시 부산 서구 서대신동1가 1 옛 부산여고 자리에서 화가 이한식(52)씨와 인제대 의대 명예교수 최하진(73)씨, 독일영사관 관계자 등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독병원의 정식명칭인 「독일적십자병원」표지석 제막식이 열렸다.
구서독정부가 54년 5월17일 세운 이 병원은 당시로서는 최신의 의료시설을 갖추고 독일인 의사와 간호사 80여명을 포함, 1백60여명의 의료진이 58년말 문을 닫을 때까지 무려 26만여명의 환자를 치료했다.
표지석 제막을 주도한 이씨는 12세였던 57년 해운대에서 갖고 놀던 포탄이 터지는 바람에 왼팔과 왼쪽다리가 잘리는 중상을 입고 이 병원에 입원했다. 6개월간 정성을 다해 무료치료해 준 이방인 의사들을 잊을 수 없었던 이씨는 생활에 여유가 생긴 올해 초부터 본격적인 기념사업 추진에 나섰다.
이씨는 병원의 정확한 위치 등 관련자료를 얻기위해 찾아간 독일영사관에서 또다른 보은의 동지를 만났다. 영사관측이 당시 서독병원에서 근무했던 의사라며 수소문해준 인제대 의대 명예교수 최씨였다.
최씨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이곳에서 의료수업을 받았고 이후 병원측의 주선으로 당시로서는 하늘의 별따기와 같았던 독일유학까지 다녀왔다.
먼저 병원터를 알릴 수 있는 표지석을 제작하기로 한 이들의 뜻은 조각가 문성권(40)씨가 선뜻 무료제작을 맡고 나서는 바람에 어렵지않게 이루어졌다.
화강암 재질로 된 표지석은 가로 1.9m, 세로 1m 기단위에 몸을 태워 주위를 밝히는 촛불 모양의 표석이 2.2m 높이로 세워져 있다. 이씨도 『이제서야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은 느낌』이라며 『앞으로 내작품을 독일의 적십자병원에도 기증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씨도 『서독병원은 선진의료기술 전파, 의료기자재 기증 등으로 국내 의학발전에도 큰 자취를 남겼다』며 『표석건립은 독일인들이 베푼 인술을 오래 기억하기 위한 한국인들의 작은 정성』이라고 말했다.<부산=김종흥 기자>부산=김종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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