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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미외교 새로하자/안병준 연세대 교수·국제정치(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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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미외교 새로하자/안병준 연세대 교수·국제정치(아침을 열며)

입력
1997.10.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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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간에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마찰은 사무적인 반응보다는 안보, 통상 및 통일을 위한 과제지향적 대미외교가 절실하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이를 위해 워싱턴의 정책결정 과정과 미국정치의 다원주의 성격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며 잘 조정된 전략지침 아래 21세기를 지향한 대미관계를 재정비해야 한다.지난주 워싱턴포스트의 제프리 스미스 기자는 한국이 북한에 양보를 거부함으로 인해 미국은 4자회담에 대한 희망을 포기했다고 보도하여 물의를 일으켰다. 물론 한국정부와 미 국무부는 이를 전면 부정했다. 한편 미 무역대표부는 대미 한국자동차수출에 대해 「수퍼 301조」를 적용하여 통상마찰을 표면화한 바 있다. 동시에 미 국방부는 한미동맹을 신미일안보선언이나 미호주안보협력성명과 같이 중장기적으로 재정의하자고 제안했으나 한국정부가 주저했다는 보도도 흘러나왔다.

이와같은 사태진전을 깊이 음미해보면 미국은 범세계적인 안보, 통상 및 지역전략을 자못 공세적으로 이행하고 있는데 반해 한국은 이에대해 그때그때 국내정치에 입각하여 일상적으로 사후반응만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결과가 기대했던 것과 다르게 나왔을 때는 국내정치세력과 여론이 감정적인 대응을 나타내어 한미관계는 긴장되고 핵심현안 해결은 지연되었다.

이렇게 되는 근본적 이유중의 하나는 워싱턴의 정책과정과 미국정치의 작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현안문제를 국내정치시각에서 보기 때문이다. 워싱턴에서는 안보, 통상 및 지역문제를 범세계전략차원에서 취급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한국은 세계 180여개국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특히 냉전이 종식된 이후 미국 자신을 위협하는 세력이 없어진 세계에서 미국은 외교통상정책을 국내정치 시각에서 추구하고 있다. 예컨대 통상대표부는 의회와 자동차업계의 견해 및 이익을 우선시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정치는 다원주의적인 성격을 띠면서 이익과 아이디어간의 경쟁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워싱턴에는 100여개 이상의 연구소(싱크탱크)들이 정부와 언론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 서로 다투고 있는 것이 이를 잘 말해준다.

미국정부의 대한반도정책도 이와같이 갈등과 타협과정을 거쳐서 결정되고 있다. 물론 국무부의 동아담당차관보가 가장 중요한 직책이다. 그러나 국방부의 국제안보담당차관보는 세계전략 및 군사적 고려를 우선시하여 때로는 국무부와 다른 입장을 취한다. 양자간에 조정을 실시하여 정부입장을 정리하는 것이 백악관안보보좌관의 역할이다. 여기서 우리가 유의할 점은 이 부서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담당자들은 한국정치 실상을 너무 잘 알고 있으며 그들은 이것을 활용하여 한국정치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측이 이에 대하여 일상적인 통로를 이용하여 감정적으로 대응한다면 큰 효과는 없고 오히려 역이용 당할 수 있다. 우리도 미국정치의 규칙과 관행을 잘 활용하여 사전에 우리 입장을 이해하고 지지하는 세력들을 규합하고 키워두어야 한다. 위급한 사태가 예상밖에 일어났을 때는 주무장관이 상대방과 곧 통화를 해서 최악의 대결과 갈등을 최대한 줄이고 비록 양국간에 이견이 있더라도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고 신뢰를 유지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

이처럼 대미외교를 체계적으로 실시하려면 우리측에서도 어느 구심점이 있어야 하고 거기서 시달하는 전략지침과 조정하여 실무자들은 협상을 일관성있게 추진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때 관계부서는 사건이 터진 연후에야 그것을 수습하기 위해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하기 마련이다. 정치세력들은 제각기 「강경대응」을 외치면서도 우리 국익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우리도 이제 이스라엘 일본 대만 심지어 중국 등이 잘 해온 바와 같이 우리가 추구하는 안보, 통상, 통일정책을 지지하는 세력을 미국행정부는 물론이고 의회, 언론, 국민 속에 적극 배양해야 할 것이다. 이 목적을 달성하는데 필요한 조치들을 합법적으로 집행할 수 있도록 대미외교 체제를 강화해야 한다.

한국과 미국은 이제 주고받는 동반자들이다. 95년부터 한국의 대미수입량은 독일의 대미수입량을 능가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이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 우리의 대미무역적자는 미국내에서 고용창출과 수출신장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을 미국인들에게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한다. 우리의 국익을 위해 미국을 활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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