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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폭정치의 청산/박승평 수석논설위원(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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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폭정치의 청산/박승평 수석논설위원(메아리)

입력
1997.10.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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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치권에 우선 묻고싶다. 정치란게 전쟁인가, 혁명인가, 제2의 십자군원정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카지노 게임이나 신종범죄라도 된다는 것인가.이런 물음에 정색을 하며 반론을 제기하고 싶은 사람들은 최근 2∼3일 우리 정치권, 아니 우리 대여당 내부에서 빚어지고 있는 사태를 한번 살펴보라고 권하고 싶다. 검찰의 비자금수사유보와 이회창 총재에 의한 충격적인 대통령탈당요구로 촉발된 여당내분과 결별사태를 놓고 전면전·사생결단·혁명과업·대란·성전이라는 소리뿐 아니라 끝내기 도박·막가파식 범행 등 온갖 극단적 표현이 동원되고 있는 것이다.

현실정치에 어둡고 냄새나는 구석이 있을 줄 짐작은 했다지만 그 정도가 이 지경에 이를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으랴 싶다. 그래선지 소위 문민정권을 탄생시킨 대여당다운 자세는 고사하고 최소한의 예의염치나 주먹패 정도의 의리조차 찾을 길이 없다는 극단적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당장 어제만해도 그렇다. 전날 총재가 겨눈 거역과 결별의 칼날이 바로 다음날 사무총장 등에 의해 사표제출이라는 행태로 또 달리 겨눠지지 않았던가. 거역이 거역을 낳고 있는 배덕정치의 악순환을 과연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필자는 이런 비뚤어지고 자기 파괴적인 정치야말로 자폭정치에 다름아니라고 규정하고 싶다.

사실 융단폭격이나 자폭의 특공작전 등은 정상적 삶이 부정될 수 있는 전시의 전투적 개념에서만 용인될 수 있는 불가피한 행위이다. 낙동강 방어전때처럼 나라의 명운이 경각에 이르렀을 때, 베티고지의 영웅 김만술소위처럼 수십배의 적이 인해전술을 펴 고지를 뒤덮어 올 때라야만 적 아 구분없는 무차별 포격과 폭격이라도 감히 요청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행위속엔 한 목숨바쳐 나라의 위기를 구하겠다는 비장함과 짙은 애국심이 서려 있다. 하지만 자폭정치속엔 그런 것보단 계파나 정파적 이해나 헤게모니장악의도만 번뜩일 뿐이 아닌가.

자폭정치가 갑자기 생겨난 건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지금껏 되풀이되어온 한국정치의 자화상이라고 보는게 옳을 것이다. 권력을 잡고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언제나 전임자의 도움을 받아야 하면서도 오히려 당선뒤에는 전임자를 단죄하거나 차별화함으로써 정치적 기반을 구축할 수 밖에 없었던 역리와 배덕의 사생아인 것이다. 노씨가 그랬고, 결과적으로 김씨가 그랬으며, 이제 이씨에게로 이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상념은 한국정치에의 환멸과 불신을 더욱 깊게 해주는 것이다.

자폭정치가 펴보여온 대표적 행태가 「헤쳐 모여」식 정치와 「킹 메이커」라는 정치거간꾼의 역할증대였다. 정치적 이념·정책의 대결없이 계속되어온 철새정치는 건국후의 우리 정치사에서 민주당 신·구파의 분당, 김영삼·김대중씨의 잦은 갈라섬, 이민우 총재의 신민당행보에 반발한 집단탈당과 통일민주당의 창당, 김대중씨 정치복귀후의 민주당탈당과 국민회의 창당 등등 숱한 「헤쳐 모여」의 자폭성 「해프닝」을 연출해 왔던 것이다.

전씨와 노씨의 동창으로 1차 킹 메이커 노릇을 했던 김윤환 의원이, 신민주계를 이끌고 문민정권탄생에 두번째 큰손 역할을 한데 이어 지금은 영남후보배제론을 성사시킨 결과로 세번째로 이총재의 원군이 되고 있는 현상도 한국정치의 앞날을 생각한다면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다.

결국 이념이나 정책대결, 그리고 유권자들의 현명한 판단이 아니라 자폭과 흥정이나 지역적 세몰이로 정권을 주고 받으려는 우리 정치의 고질적 행태를 이제라도 유권자들이 깊이 인식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그런 냉철한 인식아래 오늘의 신한국당결별사태를 본다면 비극적인 자폭정치의 진정한 청산이야말로 우리정치의 제1의 과제임을 알게 될 것이다.

3김정치로 불리는 비리와 술수의 정치는 이제 없어져야 한다. 그러나 그런 명분을 떳떳이 앞세우려면 신한국당은 눈뜨고 보기 거북한 자폭적인 저질의 정치행태부터 먼저 없애야 한다고 권고하고 싶다. 지금과 같은 꼴을 계속 보여서는 무슨 수로 국정을 안정시키고 명분을 살릴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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