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모택동)의 평생 애독서는 자치통감이었다. 덩샤오핑(등소평) 역시 이 역사서를 머리맡에 두고 틈만나면 읽었다고 한다. 황제가 통치하는 데 참고하도록 쓰여진 이 책의 애독자라는 공통점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들 두 지도자의 통치술은 지향하는 목표가 달랐음에도 놀랄만큼 유사했다.천안문사태 이후 보수기조로 흐르는 정책노선을 반전시키기위해 덩샤오핑이 주도한 정치캠페인이었던 92년의 남순강화와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을 비교해 보면 둘의 유사점은 극명하게 드러난다. 둘다 중앙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에서 자신의 말이 먹혀들지 않는 「사령부」에 대한 「포격」을 개시했다. 모는 상하이(상해)를, 등은 상하이와 함께 선전(심천), 주하이(주해), 난창(남창)을 공격기지로 삼았다. 모가 노선투쟁의 창으로 삼은 것이 상하이의 문회보였다면 등은 상하이의 해방일보를 활용했다. 모는 린바오(림표)를, 등은 양상쿤(양상곤)을 앞세워 군부의 지지를 이끌어내면서 대세를 결정지었다.
우리의 경우 집권을 꿈꾸는 이들의 「자치통감」은 선배 권력자들인 것 같다. 신군부세력이 집권을 위한 「전술교리」로 삼았던 것이 「5·16」이었음은 주지의 사실. 언론통폐합을 통한 언론길들이기, 폭력배 소탕을 통한 민심끌어안기가 대표적 베끼기였다. 현재의 대권주자, 특히 신참 주자들에게서도 선배 모방의 행태는 쉽게 발견된다. 한 주자는 한 때 자신이 투쟁의 대상으로 삼았던 권력자의 「번의」를, 또 다른 주자는 자신을 정치의 길로 인도했던 또다른 주자의 「말바꾸기」를 충실히 본받고 있다.
22일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는 김영삼 대통령과의 결별을 선언한 뒤 목천의 독립기념관을 찾았다. 이는 87년의 노태우 대통령후보가 「비장한」어조로 6·29선언을 하며 전두환 당시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연출」한 뒤 국립묘지를 찾은 것을 연상시킨다. 승리한 자를 베끼는 것은 승리를 위해서다. 하지만 승리는 베껴지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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