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계한 트럼페터 쳇 베이커/최근 내한한 에릭 클랩튼·데이브 브루벡·지미 쥬퍼 등 젊은날보다 눈부신 만년/“재즈는 영원한 도전이다”백인 재즈 트럼페터 쳇 베이커만큼 재즈의 영욕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스타는 드물다. 만년 미소년으로 남아 있을 것같던 얼굴은 50살을 넘자 해괴한 주름으로 일그러졌고, 아름다웠던 보컬은 쇳소리로 변하고 말았다.
50년대 웨스트 코스트 재즈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낸 그는 연주 실력에다 개성적 보컬까지 겸비한 미남 백인이라는 천혜의 재능 덕택에 70년대 중반까지 높은 인기를 누렸었다. 그러나 연예가의 검은 손, 마약이 그를 덮치고 만다.
수렁으로부터 재기하고 발표한 82년작 「평화(Peace)」를 선두로, 91년의 「비탄(Heartbreak)」 등 80년대 이후의 작품들에는 젊은 시절에는 볼 수 없었던 인간 베이커가 있다. 미성은 갔다. 금방이라도 숨이 끊일듯한 트럼펫과 보컬, 그것은 조락의 미학이다. 88년 세상을 뜰 당시 그의 나이는 59세.
노장의 재즈는 시효만료된 구닥다리 유행 음악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에 대한 「인간적 저항」이다.
최근 내한했던 에릭 클랩튼. 마약의 악몽, 아들의 죽음 등 그는 인생의 쓴맛을 볼만큼 봤다. 재즈의 고전 「어려운 시절(Hard Times)」을 멋지게 불렀던 90년의 작품을 필두로, 이제 그는 재즈에의 관심을 더욱 기울여가고 있다.
「테이크 파이브」의 주인공 데이브 브루벡(77)의 만년은 젊은 시절보다 더욱 눈부시다. 현대사의 대전환점이었던 88년 레이건―고르바초프 정상 회견장에, 그는 미국 예술가로서는 유일하게 초청되는 영예를 누렸다. 50년대 쿨 재즈로 이름 높던 지미 쥬퍼(76)는 예순 넘긴 나이에 난해한 프리 재즈에 뛰어들더니, 이제는 한술 더 떠 전자 사운드에 마지막 투혼을 불사른다.
피아니스트 오스카 피터슨(72)의 노익장 역시 둘째 가라면 서럽다. 바흐를 테마로 했던 90년의 라이브 앨범에서 그는 젊은날보다 더 현란한 연주를 들려준다. 그와 콤비를 이뤘던 기타 속주의 주인공은 당시 나이 57세의 조 패스.
지난 5월 서울에서는 재즈 피아노의 노장 10명이 함께 펼쳤던 공연 「100개의 황금손가락」이 대성황속에 열렸다. 앞서 95년 6월 같은 곳에서 존 루이스, 행크 존스 등 칠순의 대가들이 가졌던 무대의 속편이었다. 재즈는 영원한 도전이다.<장병욱 기자>장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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